전쟁의 피해국인 한국이 러시아 전몰자에 대한 추모비 건립을 허용하는 것은 굴욕적 행위라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 안보 및 러시아와의 외교관계 개선, 연해주지역에 독립지사들의 추모비 건립 등 실리를 고려해 기념행사를 허용했다.
이를 반대하는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러일전쟁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땅에서 시작됐다. 러시아의 지배 야욕은 일본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기념행사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면 모두 놓치고 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전쟁의 또 다른 당사국인 일본의 입장이다. 이번 기념행사를 본 일본이 승전기념행사나 승전기념비 건립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정부는 지금보다 더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일지 모른다.
정부가 이 행사를 주도적으로 추진해 단순 추모행사가 아닌 전쟁 당사자들의 화해와 용서의 장으로 삼았다면 어떠했을까.
한국과 러시아, 일본이 참가하는 기념행사를 주관했다면 100년 전 껄끄러웠던 세 나라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승화시킨다는 명분을 얻고 실리도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실리 가운데 하나가 관광수입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시립박물관에는 러일전쟁 관련 유물 몇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 관람객은 이 전시물에 관심을 나타낸다.
인천에 있는 러일전쟁 자료를 잘 활용하면 관광상품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관광객은 러시아인의 시각에서, 일본 관광객은 일본인의 시각에서 러일전쟁과 관련된 자료와 장소들을 둘러볼 것이기 때문이다.
배성수(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muse6817@hanmail.net)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