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말죽거리…’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을 때 학교생활을 다룬 작품이었어. 딱 그 영화에서 나오는 78년경에 입학했지. 등굣길 풍경 등은 리얼했지만 우리 때 학창시절을 대변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봐. 다른 영화가 그렇듯이 학창 생활의 일부분을 전체인 것처럼 말하지.
심=내가 여자임에도 이 영화를 당신보다 더 좋게 봤다는 것이 아이러니지. 나는 이 영화가 당신이 말했던 디테일이란 측면에서 7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공통의 향수를 준다고 생각해. 특히 이 영화의 매력은 학교제도에 대한 ‘일갈’에 있어. 현수가 쌍절곤을 휘두르며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라고 했던 그 일갈. 통쾌하잖아.
남=난 당신이 말한 그 공통의 향수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를 다르게 봐. 이 영화는 ‘친구’ ‘품행제로’ ‘클래식’ 등 70, 80년대 학교를 다룬 영화들에 비해 ‘향수’ 혹은 ‘낭만’에 덜 기대. 오히려 당시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을 리얼하게 가감 없이 영상으로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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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 영화가 리얼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못해. 유하 감독에게도 얘기했지만 나는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해. 이 영화의 동력은 평범하고 소심한 남학생이 어떻게 영웅이 되는가 하는 과정에 있지. 결국 현수는 리샤오룽이 되지만 그 방식이 더티하잖아. 쌍절곤이 뭐야. 두 개의 남근(男根) 아니겠어? 남자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남근이 필요한 사회가 70년대가 아니었을까.
남=또 남근이야? 당신 전공 나오네. 내가 볼 땐 유하 감독은 이 영화에서 스타일에 대한 강박을 버린 것 같아. 자기가 하고 싶었던 얘기니까 소박하게 가고 싶었던 거지. 액션과 멜로 두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기보다 몰입을 방해해. 멜로는 판타지적이고, 학교쪽 이야기는 리얼하거든. 단일한 톤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심=예쁘고 공부 잘 하는 여학생을 쫓아다니는 남학생들의 판타지는 유구하잖아. 당신의 판타지를 대변하는데 뭐가 맘에 안 들어?
남=전체의 완성도를 멜로가 깎아 먹는 것 같아. 버스에서 본 예쁜 여학생을 좋아하고 그런 경험은 비슷하지만, 그걸 넘어서 은주가 우식에게 배신을 당했는데도 함께 도망간다는 전개는 개연성이 없어. 작위적인 느낌이야.
심=그건 나도 동의해. ‘말죽거리…’는 ‘남성 얼굴의 수난사’이기도 해. 주인공이 선생님에게 계속 뺨을 맞다가 끝내 ‘몸의 단련사’를 통해 극복하잖아. 그런데 그때도 대학 안 가는 애들 많았어. 그 아이들은 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왜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거야. 그런 점에서 감독 역시 먹물스러운 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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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얘기를 하는 게 더 어설프지. 예를 들면 나도 알고 감독도 아는 건, 영화에서처럼 아이들이 ‘빨간 책’을 팔다가 걸렸을 땐 뻑 하면 때리던 교사도 안 때린다는 거지. 그냥 막대기로 아이들의 중요 부위를 쿡쿡 찌르지. 그게 뭐냐면 당시 교사들도 성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했다는 거지. 다른 데서 폭압적이니까.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이야기지.
심=좀 다른 얘기지만 재미난 점은 이 영화 역시 청춘영화의 틀을 깨지 못 한다는 거야. 여학생에 반하는 공간은 버스, 만나는 곳은 빵집, 놀러가는 데는 롤러장이나 고고장, 여성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음악이야. 똑똑한 여자애는 공부 못하고 남성다운 애를 더 좋아하지. ‘품행제로’나 ‘친구’에도 그대로 나와. 왜 그렇게 도식을 못 깰까. 난 ‘말죽거리…’가 제목처럼 더 잔혹하고 어두워도 될 것 같아. 그 시절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 있었는데. 우리 학교의 잔혹사는 공포영화의 껍질 없이는 나타나지 못 하는 게 비극이야.
남=좋은 지적이야.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유하 감독은 시인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이야기는 아기자기한데 영화적 리듬 감각이 없어. 응축된 감정과 긴장감을 유지한달지, 감정선을 유지하는 데 힘이 부족한 것 같아.
심=그 점은 나도 동의해. 유하 감독의 영화는 꼭 산문이나 소설을 읽는 듯해. 관객을 배려한다는 의도겠지만 ‘영화적 영화’는 아닌 것 같아.
남=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결정판인 것 같은데 유하 감독 자신에게도 일종의 성장단계를 의미하는 거 같아. 다음 작품에서는 주제와 스타일 면에서 자기 색깔을 찾는 노력이 나오겠지. 이제 권상우 이야기 좀 해볼까? 권상우는 자신의 특징을 잘 드러낸 것 같아. 그의 얼굴은 건방지고 도도하면서도 선이 섬세한 여성적 매력이 있어. 근데 옷을 벗으면 완전히 ‘작은 슈워제네거’야.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는 그런 양면적 매력을 잘 못 살렸어.
심=그래. 권상우의 매력은 얼굴과 몸의 ‘이형(異形) 접합’이야. 권상우의 도도한 재벌2세 같은 TV 이미지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감독을 높이 평가해.
남=하지만 유하 감독도 권상우 웃통 벗기는 건 마찬가지더군. 당신도 되게 좋아했잖아. 영화에도 나오는데 ‘정무문’ 하면 나한테도 추억이 있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삼촌들하고 이 영화를 보고 집에 왔다가 아버지에게 엄청 혼났지. 그때 아버진 모르셨겠지. 그 아들이 나중에 커서 영화과 교수가 될지.
심=남자들은 리샤오룽에 대해 맹목적으로 뿌리 깊은 향수가 있는 것 같아. 쌍절곤 연습하다 머리통 깨졌다, 그 얘기는 남자들이 군대 얘기 다음으로 많이 하잖아. 그게 아쉬워. 왜 여자들은 그런 걸 안 만들지. 리샤오룽에 대비되는 여성들의 문화적 지층은 ‘들장미 소녀 캔디’ 정도일 걸. 여성감독들도 그런 영화 만들었으면 좋겠어. 2000년대에서 바라보는 1970년대는 남성 감독들의 시선만으로 그득해. 그런데 ‘들장미 소녀’를 본 소녀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
남=두 아이 엄마가 돼서 지금쯤 권상우 나오는 TV 주말극 보고 있겠지. 당신처럼 말이야.
정리=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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