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화석’ 사람발자국 맞나…이융남박사 반대소견

  • 입력 2004년 2월 10일 18시 47분


논란이 된 ‘사람 발자국’ 화석. 뒤꿈치가 하이힐처럼 올라가 있는 모습이 보인다.
논란이 된 ‘사람 발자국’ 화석. 뒤꿈치가 하이힐처럼 올라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제주도에서 발견된 ‘사람 발자국’ 화석에 대한 발표가 성급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좀 더 연구를 거쳐 국제학술지에 논문으로 실린 다음에 발표하는 것이 학계의 관례라는 지적이다. 또 관련 학계에서는 발표 전에 이 화석이 실제 사람 발자국인지, 5만년 전의 것인지를 두고 이견이 있었다.》

▽왜 발뒤꿈치가 들린 걸까=한국교원대 김정률 교수팀은 사람 발자국 화석 100여점을 발견했다고 6일 발표했다. 전체적인 모양이 사람 발과 비슷하고 뒤꿈치, 중간 호(아치), 앞부분이 뚜렷한 점에서 사람 발자국 화석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발표에 앞서 이번 화석에 대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융남 박사가 제출한 소견서에는 다른 의견이 있었다. 사람 발자국이라고 주장된 화석을 보면 거의 모두 뒤꿈치가 ‘하이힐처럼’ 지면보다 올라가 있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박사는 “발뒤꿈치 부분이라고 주장되는 곳이 발에 눌린 자국이라면 지면보다 들어가야 하는 게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사람 발자국은 발의 앞부분과 뒤꿈치가 함께 들어가고 중간이 약간 튀어 나온 아치 형태를 이룬다. 물론 발자국 전체는 지면보다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 라이토리에서 발견된 원시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일명 루시)의 발자국 화석을 보면 이런 아치 형태가 뚜렷하다. 루시의 발자국 화석은 360만년 전 것이지만 엄지발가락 부분이 다른 발가락 부분과 선명하게 구별될 정도다.

김 교수는 “뒤꿈치가 들리게 된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아직 알 수 없지만 발이 앞쪽으로 밀려들어가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루시처럼 보존 상태가 양호한 발자국은 드물다”고 밝혔다.

또 이번 발표에 참가했던 경북대 양승영 명예교수도 “세 번씩 현장을 확인하고 외국 논문에서 사람 발자국이 찍힌 다른 화석도 유심히 검토했다”고 말했다.

▽왼쪽과 오른쪽 발자국이 똑같다=김 교수팀은 이번 화석 가운데 사람이 걸어가서 생긴 발자국의 보행렬이 보인다고 밝혔다. 이런 발자국 보행렬에서는 보통 왼쪽 발자국과 오른쪽 발자국이 교차돼 나타난다.

원시인류 루시의 발자국 화석. 엄지발가락과 아치 형태가 뚜렷하다.

그런데 이 박사의 소견서에는 화석에서 왼쪽 발자국과 오른쪽 발자국의 깊이가 똑같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나와 있었다. 이 박사는 “정상적인 보행렬에서라면 왼쪽 발자국은 왼쪽 바깥부분이, 오른쪽 발자국은 오른쪽 바깥부분이 깊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화석이 만들어진 후 변형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5만년 전의 것 아닐 수 있어=김 교수팀이 발자국 화석의 연대를 추정한 방법에도 다른 의견이 있었다.

김 교수는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지층의 연대는 주변 송악산의 용암층에 대한 2002년 지질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5만년 전이라고 추정했다”고 말했다. 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주변에 쌓여 이루어진 지층이 화석 발견지를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화석 발견지의 하부에서 발견된 전복과 조개의 시료를 갖고 연대를 측정한 결과 이 시료가 4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는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손영관 교수의 연구도 있었다. 손 교수는 “발자국 화석은 이 시료보다 위층에 있기 때문에 4000년 전보다 더 젊은 2000∼3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걸어가면서 생겼다고 주장되는 발자국의 보행렬(A, B). 일반적인 보행렬에서는 왼쪽과 오른쪽 발자국이 교차돼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보행렬 A를 보면 두 발자국 모두 뒤꿈치가 들려 있고 진행방향의 왼쪽이 오른쪽보다 더 높다. =사진제공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손 교수는 “송악산의 화산 활동이 시작되면서 화산재가 근처에 퇴적되기 시작했겠지만 화산 활동이 끝난 후에도 상당기간 바다에 떠다녔던 화산재가 화석 발견지에 퇴적됐을 것”이라며 “화석 발견지는 송악산 용암보다 훨씬 후대에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김 교수가 참고했던 송악산 용암층에 대한 연대측정방법은 칼륨-아르곤법인데 이 방법은 젊은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기에 오차가 굉장히 커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의견이다. 칼륨-아르곤법에 따른 연대 측정의 오차는 2만3000년이나 되지만 손 교수가 사용했던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은 오차가 100년 이하다. 하지만 양 교수는 “두 가지 연대측정법의 결과를 모두 알고 있었다”며 “지층의 단단한 정도를 근거로 5만년 전이라고 추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제주화석 지질연대 조사단 구성 정밀조사▼

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일대에서 발견된 사람 발자국 화석의 연대추정이 논란에 휩싸이자 문화재청이 연합조사단을 구성해 정밀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10일 제주도 발자국 화석 유적의 정확한 연대 산출을 위해, 반박의견을 제시한 경상대 손영관 교수 등 관련 학자를 포함해 지질연대 측정 연합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화석 형성 연대가 5만년 전과 4000년 전으로 상이하게 나온 이유는 △화석 연대측정 방법 △시료 채취 장소 △시료의 성격 등이 다른 데 따른 것이므로 이 지역에 대한 보존조치와 함께 연대측정을 포함한 종합학술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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