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미국 보스턴의 한 빵집을 우연히 방문한 한 부동산업자가 프랑스 제빵사가 갓 구워낸 빵 맛에 매료돼 문을 연 빵집이 ‘오봉팽’의 시작이다.
미국 내 200여개 지점과 런던, 상파울루 등 해외 도시 50여개 지점에 진출한 오봉팽이 지난해 1월 서울 광화문에도 조용히 선보여 1년여 만에 도심 속 명소가 됐다.
오봉팽이 지향하는 빵집은 ‘베이커리 카페’다. 좋은 재료로 만든 빵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상의 여유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웰빙 열풍을 조금 먼저 예측한 오봉팽 코리아㈜ 이종원 대표(33)는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를 꿈꾼다.
●베이글로 만난 사랑
‘친애하는 피터 하우드씨, 우리 부부는 데이트 때 즐겨 먹던 블루베리 베이글 덕분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외국계 커피 체인점들이 속속 국내에 진출했으나 맛있는 베이글 빵집은 여전히 드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시장의 창조자,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이 대표가 2001년 11월 오봉팽 본사의 인터내셔널 프랜차이징 부서 책임자에게 보낸 e메일 편지이다. 이미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프랜차이즈 제의를 받았던 오봉팽 본사는 이례적으로 즉각 그에게 답변을 보내 왔고, 7개월 만에 계약을 체결했다.
“당신의 빵에 대한 열정과 비전이 우리에게 강한 믿음을 주었소.”
지난해 1월 광화문 본점을 시작으로 이화여대점, 여의도점을 차례로 연 이 대표는 조만간 강남 지역 3곳도 선보인다.
그는 11세 때 가족을 따라 미국 뉴저지로 이민가 컬럼비아대와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연봉 1억원을 받는 컨설턴트로 일했다. 20여 년째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에게 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바쁘고 틀에 박힌 생활을 하던 그는 삶의 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행복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빵집 주인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왜 ‘프랜차이즈’를 택했을까.
“자본이 부족하고, 외식 경력도 없었어요.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얻는 대신 총매출액의 5%를 본사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광화문 본점은 지난 해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베이커리 카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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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광화문 본점. 재지(jazzy)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70여평의 매장은 꽉 메워진다.
따뜻한 포카치아 빵에 훈제 칠면조와 체다 치즈를 녹인 샌드위치, 허니 월넛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 등을 먹는 화이트 칼라 고객 중 30%는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이다.
오봉팽의 운영 규칙 중 핵심은 두 가지이다. 살아 있는 효모를 넣은 신선한 빵을 현장에서 매일 직접 굽는 것과 빵을 먹음직스럽게 진열해 손님이 쇼핑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매장에 들어서면 빵이 진열된 4단 알루미늄 선반부터 보인다. 맨 위에 머핀류가 놓이고, 눈 높이에 롤 크로아상 쿠키, 맨 아래 베이글 순으로 놓인다. 가장 인기 있는 베이글은 아래쪽에 놓여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유기농 야채 샐러드와 직접 짠 오렌지 주스도 있다.
그는 도시사회학을 전공하며 도시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주목했다. 미국 플로리다대 사회학 교수인 레이 올든버그는 1990년대 커피바가 집과 직장을 제외한 사교 공간인 ‘제 3의 장소’로서 기능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건강과 여유를 제공하는 베이커리 카페야말로 웰빙 시대 ‘제 3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
●슬로 리더십, 슬로 라이프
이 대표에게는 안팎으로 시련이 있었다. 아내가 희귀성 뇌출혈로 쓰러졌던 것과 조직 운영의 갈등을 겪은 것이다.
오봉팽 코리아㈜의 이사이자 이 대표의 든든한 정신적 멘토인 아내는 다행히도 강한 신앙심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그것은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이후 우리 부부는 모든 일과를 함께 하며 늘 감사합니다.”
오봉팽 코리아㈜에는 현재 65명의 사원이 일한다. 이 대표는 직원들과 1주일에 한번씩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 등 경영 관련 서적 스터디를 한다. 이 대표는 ‘배우는 벤처 조직’을 만들고 싶어 한다. 직원 개개인이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딱 부러지는 것보다 애매모호하게 말한다”는 그는 구체적으로 할 일을 지시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참견하지 않고 지켜본다. 그것이 개인의 창의력과 자발성을 높여준다고 믿는다. 이런 ‘슬로 리더십’을 오히려 버겁게 느낀 일부 직원들은 지난해 회사를 떠나갔다.
완벽한 하모니를 위해 고객의 ‘슬로 라이프’도 추구한다. 매니저 김현숙씨는 말한다.
“우리 고객 중 상당수는 지식수준과 소비 능력이 모두 높아요. 그런데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그들의 성격이 너무 급해 놀랍니다. 슬로 라이프란 슬로 푸드, 즉 비싼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 속의 여유를 찾는 것이 아닐까요.”
이 대표는 “커피와 베이글을 먹을 때 마음이 가장 평화로워진다”고 말한다. 그의 슬로 라이프 비결은 의외로 소박했다. 그것은 ‘빵이 주는 감사와 평화’였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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