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현의 노래'…우륵, 음악위해 조국을 등지다

  • 입력 2004년 2월 13일 17시 35분


우륵의 삶과 음악을 다룬 소설 ‘현의 노래’를 펴낸 김훈씨. 그는 “우륵이 메추리, 쥐, 까치 등의 제목을 붙인 곡들을 연주했다고 전해진다”며 “이 곡들은 자유롭고 질박한 정서를 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김미옥기자 salt@donga.com

우륵의 삶과 음악을 다룬 소설 ‘현의 노래’를 펴낸 김훈씨. 그는 “우륵이 메추리, 쥐, 까치 등의 제목을 붙인 곡들을 연주했다고 전해진다”며 “이 곡들은 자유롭고 질박한 정서를 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김미옥기자 salt@donga.com

◇현의 노래/김훈 지음/294쪽 9500원 생각의나무

2001년 동인문학상,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훈씨(56)가 펴낸 새 소설이다.

이전 작품 ‘칼의 노래’가 이순신이라는 무인(武人)을 내세웠다면 ‘현의 노래’는 우륵이라는 예인(藝人)의 이야기에 작가 특유의 영웅주의를 담았다. 작품에서 국운이 기울어 가는 가야의 ‘궁정악사’ 우륵은 자기를 알아주는 진흥왕의 신라에 투항하고, 현(絃)이 구현하는 궁극적 아름다움을 향해 삶을 거듭거듭 불태워 간다.

작가는 “대학 시절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읽다가 우륵의 이야기를 담은 다섯 줄가량의 짧은 구전설화에 눈길이 갔다”며 “‘음악을 위해 조국을 배반했다’는 사실이 충격과 여운을 남겼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의 그에게 우륵의 가야 탈출 동기가 쉽게 정당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김씨는 35년의 시간이 흐른 지난해 정초부터 시월까지 시간 날 때마다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의 악기박물관을 찾아가 유리진열장 속에 누워 있는 옛날 악기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곤 했다. ‘칼의 노래’를 쓰기 전 충남 아산의 현충사를 찾아가 종일 칼들을 바라보던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고색창연한 악기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종 때 이후로는 연주법이 전수되지 않아 ‘잠자는 악기’로 남은 당(唐)비파도 있었습니다. 하나하나가 신비스러워 보였어요.”

악기박물관에 놓인 가야금은 1400여년 전 우륵이 만든 뒤 한번도 변형을 거치지 않았다. 우륵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실체이기도 하다. 삼국사기의 ‘다섯 줄’ 외에는 우륵의 삶을 기록해 놓은 사료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자료 부재의 한계를 넘기 위해 작가는 오디오 앞에 앉아 가야금 명인 황병기씨의 연주를 자주 들었다. 황씨 역시 “우륵 시대의 음악을 재현하는 것이 내 연주의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우륵의 음악을 ‘소리로 만들 수 있는 미(美)의 절정’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현의 노래’에는 이런 음악적 요소 외에 또 달리 주목할 부분이 있다. 우륵이 살았던 6세기는 청동기에 이어 철기가 일종의 ‘신소재’로 절정을 맞이했던 시기. ‘쇠로 만든 무기들’ 때문에 대량학살이 가능하게 된 때였다. 작품 속의 신라 장수 이사부는 칼과 창으로 ‘신라 국가’를 만들어 가고,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 명장(名匠)인 ‘야로’는 무기를 누구에게 공급해야 할지 빠르게 살피는 권력 감각을 키워간다.

작가는 결국 ‘현’을 만들고 켠 사람과, ‘쇠(金)’를 만들고 휘두른 사람의 파란곡절을 좇으며 ‘예술은 무엇이고, 권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향해 깊숙하고 날렵하게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파고든 것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 초까지 노루와 원숭이가 출몰하는 일본 교토 기타야마(北山) 산속, 한 일본인 친구의 별장에서였다. 컴퓨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그는 연필심을 칼로 뾰족하게 다듬어가며 요즘은 구하기도 쉽지 않은 200자 원고지에 두 달간 950장 분량을 맹렬하게 써나갔다.

“눈이 녹을 만하면 또 하얗게 내려와 쌓이는 일본의 낯선 산속에서 악기박물관에서 바라보던 가야금을 떠올리곤 했어요. 사람의 영혼이 있다면 악기처럼 생겼을 것 같습니다.”(김훈)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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