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비축된 세계의 부(富)이자 여러 세대와 나라에 걸친 유산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러나 아끼고 사랑하고 읽지 않는 한 그것은, ‘책’은 단지 종이뭉치일 뿐이다. 최근 발간된 ‘책에 관한 책’ 세 권은 인간이 책에 쏟아온 열정과 떨림, 공명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엿보게 해 준다.
‘책에 미친 바보’(이덕무지음·권정원 편역·미다스북스)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의 저자이자 ‘조선의 대표 책벌레’로 알려진 조선 후기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책에 대해 쓴 글들을 가려 뽑은 것. 책 제목대로 그는 자신을 ‘책바보(看書痴)’라고 부른다.
어느 날 흰 좀벌레 한 마리가 그의 책을 갉아먹었다. 가만히 보니 ‘추국(秋菊)’ ‘목란(木蘭)’ 등 향기로운 풀을 나타낸 글자만 파헤친 게 아닌가. 기특히 여겨 온종일 벌레를 찾았지만 좀벌레는 끝내 도망가고 만다.
이처럼 책에 빠져 사는 그가 권하는 독서의 자세는 어떨까. “책을 볼 때는 서문 범례 저자 교정자, 그리고 권질(卷帙)이 얼마만큼이고 목록이 몇 조목인지를 먼저 살펴서 그 책의 체제를 구별해야지, 대충대충 넘기고서 책을 다 읽었다고 하면 안 된다.”
책에 대한 이런 올곧은 자세로 그는 규장각의 초대 검서관(檢書官)으로 평생 책만 벗하며 살 기회를 제공받았던 것.
‘아트 북 아트’(정준모 기획·중앙M&B)는 2003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2003 서울 북 아트-아트 북 아트’ 전시회를 책으로 엮은 것. 우리나라의 유명 북 디자이너와 북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비롯해 20여개국 작가 300여명의 북 디자인을 담았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책의 모습이 당대의 시대상까지 조감할 수 있게 한다.
‘채링크로스 84번지’(헬렌 한프 지음·궁리)는 앤서니 홉킨스와 앤 밴크로프트가 주연한 같은 이름의 영화(1987년 작)로 널리 알려진 책. 뉴욕의 무명 여성작가 한프는 우연히 신문에서 런던의 ‘절판 전문’ 고서점 인 마스크 서점의 광고를 보고 주문서를 띄운다.
희귀본을 꼼꼼히 찾아내는 서점 직원 도엘의 친절에 감동한 한프는 계속 주문을 띄우고, 2차 세계대전 직후의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점 가족들을 위해 식료품을 보내주는 등 우정을 이어나간다.
20년이 지나 여느때처럼 주문 편지를 보낸 한프는 ‘도엘씨가 급서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회신을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오간 편지를 모아 엮은 이 책은 무명작가 한프의 유일한 ‘유명’ 출판물이 됐다.
대서양을 건넌 우정만큼이나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두 사람의 책에 대한 집요한 애정. 19세기 말 신학자 존 헨리 뉴먼의 강연록을 도엘이 애써 찾아 보내주자 한프는 ‘은은하게 빛나는 가죽과 금박 도장…. 이걸 소유한다는 사실에 죄책감마저 들어요’라고 고백한다. 마음의 보물을 매개로 한 정신의 떨림이 은은한 공감으로 두 대륙을 잇는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