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대륙 남단에서도 남쪽으로 900km 떨어진 남극대륙 사우스셰틀랜드제도의 킹조지섬. 이곳의 세종기지는 지난해 12월 젊은 과학자 전재규씨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로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세종기지는 17일로 세워진 지 16주년을 맞는다. 이날 대원들은 날씨만 좋다면 킹조지섬에 자리한 칠레 브라질 폴란드 등 8개국 9개 기지 외국대원들을 불러 조촐한 파티를 열 계획이다. 이들에게는 혹독한 자연 속에서도 남극의 경이로움과 무한한 가능성에 매혹돼 사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은 세종기지를 중심으로 남극을 누비는 이들의 꿈과 모험, 발견의 기쁨과 위태로운 삶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 장순근 박사는 1987년 세종기지 건설 후보지 조사활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기지 완공 후 1차 월동조사대장을 맡았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월동대장을 지냈으며 북극의 다산기지와 남극의 세종기지를 오가면서 극지 연구에 몰두해온 과학자다.
●남극의 사람과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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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박사는 남극 발견 시기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책을 시작한다.
1819년부터 이듬해까지 배를 타고 다니며 눈에 띄는 땅마다 “영국땅”이라고 선언했던 에드워드 브랜스필드 영국 해군 대위, 영국 탐험가로 물개잡이에 흠뻑 빠졌던 윌리엄 스미스 선장, 남극 유빙(流氷)에 배가 갇혔지만 인내를 극한까지 발휘하며 생환한 섀클턴 탐험대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찾아오기 전에도 남극에는 숱한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기형적이랄 만큼 코가 큰 코끼리해표(海豹·바다표범), 코끼리해표 어미가 출산한 직후에 나타나 그 태반을 뜯어먹는 새하얀 남극비둘기들, 차디찬 눈 속에서 신기할 만큼 잘 자라는 이끼인 눈조류 등.
그러나 남극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는 ‘얼음’이다. 유빙들은 자연이 상상해 낸 조각품이랄 수 있다.
“책상, 집, 성, 자동차, 독립문, 나비, 공룡을 쏙 빼닮은 모습이 눈에 띄어 경이로울 정도다. (…) 얼음들은 신기한 소리로 노래하기도 하고, ‘콰과쾅’하는 굉음과 함께 장엄하게 붕괴되기도 한다. 겨울이 되면 세종기지 주변의 수면은 얼음씨가 생겨 뿌옇고 걸쭉하게 된다. 이어 손바닥만한 크기에 둥글둥글한 모양의 ‘팬케이크 얼음’이 무수하게 생겨나고 바다가 본격적으로 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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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원 위의 세종기지, 꿈과 모험의 성(城)
장 박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세종기지의 생활에 대해서도 다채롭게 들려준다. 그 중 하나는 ‘극지 봉투’에 관한 것.
“해마다 각 기지의 월동대들은 새로운 기념 도장을 갖고 와 문서작성에 사용한다. (…) 이를 알고 각국의 ‘극지 봉투 수집가’들이 반송용 봉투까지 넣은 편지를 보내와 기념도장을 찍어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세종기지로 배달된 외국인들의 요청 편지 가운데는 한글맞춤법이 엉망이지만 내용이 워낙 간절해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눈보라 속에서 항해하다 조난 직전까지 갔던 위기의 순간, 1989년 아르헨티나의 큰 배 바이아 파라이소가 침몰하자 구출하러 나간 일, 하얀 얼음 벌판에서 축구를 하거나 사냥해온 해표로 ‘해표탕’을 만들어 먹는 일 등이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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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해 12월의 사고에서도 드러났듯이 세종기지는 쇄빙선(碎氷船) 한 척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 놓여 있다.
장 박사는 이 같은 현실들을 일부러 힘주어 말하기보다는 유머 넘치는 필치 속에 차분히 담고 있다. 더 나아가 미래의 우리 남극기지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의욕적으로 제시한다.
“이제 제2의 남극기지를 만들고 두께 4000m의 빙원도 굴착할 때다. 빙원 아래 감춰진 호수의 물과 모래를 채집해 멸종된 고생물도 연구해야 한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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