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이버시대의…' 사이보그도 인격으로 볼 수 있나

  • 입력 2004년 2월 13일 17시 45분


인간이 되길 꿈꿨던 피노키오의 꿈을 미래의 사이보그에게 투영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SF영화 ‘A.I.’. ‘사이버시대의 인격과 몸’은 인간의 것으로만 간주했던 인격을 사이보그와 아바타 등에 적용해야할지 여부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인간이 되길 꿈꿨던 피노키오의 꿈을 미래의 사이보그에게 투영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SF영화 ‘A.I.’. ‘사이버시대의 인격과 몸’은 인간의 것으로만 간주했던 인격을 사이보그와 아바타 등에 적용해야할지 여부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사이버시대의 인격과 몸/김선희 지음/321쪽 1만6000원 아카넷

20세기 이후 회화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돼 버린 추상화는 구상화와 달리 재현해야 할 어떤 물질적 세계도 제거함으로써 회화를 탈물질화했다. 가령 러시아 절대주의자 말레비치의 기념비적 회화 ‘검은 사각형’은 흰색 바탕에 약간 비뚤어진 검은 사각형만 그려놓음으로써 아무런 물질적 세계도 표현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회화의 탈물질화에 성공한 듯한 이 그림은 예상치 못한 역설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과거의 구상화처럼 그림이 재현하는 물질적 세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거꾸로 그들의 시선은 1m² 크기의 캔버스에 칠해진 붓질과 물감의 질감 자체, 즉 그림 자체의 물질성에 주목하게 된다.

이런 역설은 바로 사이버시대의 논리에도 적용된다. 복제술, 사이버네틱스, 홀로그램,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 등의 과학기술을 이용한 가상현실이 추구하는 것은 실제로는 탈물질화된 가상적 세계이지만, 물질적 세계와 똑같이 지각될 수 있는 역설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비록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가상적 공간이 현실 공간을 대체할 수는 없다. 신분 확인이 가능한 몸이 결여된 사이버자아는 독립적 인격의 지위를 갖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이버 논리의 비판을 위해 단순한 문명비관론이나 반과학주의를 채택하는 구태를 답습하지는 않는다. ‘인격’이라는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하고, 그것을 사이버 논리에 적용하는 치밀한 한편의 철학적 추리물과도 같다. 여기서 저자의 근본적 전제가 되는 것은 ‘인격’의 두 가지 차원에 대한 구별이다. 인격이란 흔히 말하는 이성, 도덕적 자질, 훌륭한 성품 등과 같은 인격(성)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물리적 동일성을 유지하는 신체 혹은 몸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몸이란 한 개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근거가 된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사이버자아의 형태를 인공지능, 사이보그, 사이버자아의 세 가지로 나누고 각각의 자아형태에 대해 인격으로서의 가능성을 묻는다. 퍼트남의 ‘통속의 뇌’처럼 몸에서 뇌의 기능만을 분리시켜 새로운 자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몸과 마음이 분리될 수 있다는 데카르트적 망상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인조인간인 사이보그는 비록 인간과 동등한 인격체로 규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분명 독립적 신체를 가진 존재이자 동시에 사유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인격의 가능성이 배제될 수 없다.

한편 아바타나 아이디(ID)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사이버자아의 경우 현실에서처럼 신체적 구속을 받지 않으므로 인격이 없다. 현실과 달리 20대 남자가 40대 주부 혹은 10대 여자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내세우는 인격의 정의에 대해 동의만 한다면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한 호흡에 끝까지 내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의 핵심주제인 몸, 신체 등은 막연한 정의를 통해 논증의 선결조건으로서 주어져 있을 뿐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제목 탓에 사이버시대에 몸의 구체적 변화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이 책에 접근할 독자들이 있다면 그에 대한 답은 저자의 다음 책에서나 기대해야 할 듯하다.

박영욱 고려대 강사·서양철학 imago10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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