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책][실용기타]'뉴욕타임스로 논술을 잡아라'

  • 입력 2004년 2월 13일 21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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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로 논술을 잡아라 /황호택 지음/290쪽 1만5000원 동아일보사

아버지가 아들에게 e메일을 보내기 시작한 건 순전히 엄마의 성화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동아일보 논설위원, 아들은 영어 특기생으로 기숙사가 있는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한 고교생. 아버지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LA 타임스 등의 사설과 기명칼럼 중 좋은 글을 추려 아들에게 보내면 아들은 글을 해석해 아버지에게 답장을 했고, 아버지는 여기에 다시 의견을 붙이고 틀린 점을 바로잡아 아들에게 보냈다. 부자간의 사적인 편지지만 그냥 버리는 게 아까웠던 아버지가 아들의 학교 홈페이지에 편지 내용을 올렸던 게 첫걸음. 결국 부자간 편지는 ‘논술도 잡고 영어도 배우는’ 일석이조의 책이 되어 나왔다.

‘듣기 말하기’의 현장 실용영어가 강조되는 때, 영어 논설을 읽고 독해하는 일이 갖는 학습효과는 뭘까?

스스로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어 살이 찐 사람도 제품을 만든 회사에 법적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미국 신문 잡지 칼럼의 격조 있는 영어표현을 소개하는 한편 논술고사에 출제될 만한 논쟁점들을 함께 수록했다. 사진제공 감마

첫째, 영어논설 독해는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 이해 수준보다 몇 단계는 높은 능력을 요구한다. 게다가 책에 뽑힌 글들은 현재 미국 사회의 일정 교육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좋은 문장들이다.

둘째, 관용적 표현들을 사용할 수 있는 문화적 맥락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예를 들어 ‘Knock Wood, China will follow Spain and South Korea in fostering the educated middle class’(바라건대 중국은 스페인 남한의 선례처럼 교육받은 중산층을 길러낼 것이다)에서 knock (on) wood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 나무를 두드리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미신에서 유례된 관용구다. 책에서는 각 논설의 말미에 이런 관용적 표현의 기원까지 밝혀두었다.

셋째, 지구온난화 안락사 등 시사문제를 따라잡으며 미국식 논쟁에서는 논지 전개를 어떻게 해 나가는지를 익힐 수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의 긴급성을 알리는 칼럼 앞부분에서 거창한 주장 대신 북극곰(polar bear) 오소리(wolverine) 같은 동물들이 살던 알래스카에 온대에서 살아야 마땅한 개똥지빠귀(robins)와 버드나무(willows)가 살게 됐다고 예를 든다. 가장 좋은 설득법은 사실을 제시하는 것(Show, don’t tell)이라는 모범을 보여주는 셈.

시사적인 글 외에도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 커크 더글러스가 아버지를 회고하며 쓴 간결하고도 솔직한 금연기, ‘나의 첫 담배, 마지막 담배(My first Cigarette, and My Last)’ 등 읽는 맛이 있는 글까지 30편이 수록됐다. 편마다 사용빈도가 높은 단어 숙어는 눈에 띄게 편집해 처리했고, 글 마지막에 윤홍근 서울산업대 교수가 논술문제 한 가지씩을 제시했다.

‘뉴욕주 브롱크스의 비만 소녀 둘이 맥도널드를 상대로 자신들이 뚱뚱하게 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현명하지 못한 소비선택의 부작용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일까, 아니면 제품을 공급한 사업자에게 책임이 있는 걸까? 정부의 책임은?’

출근 전 영어학원 새벽반에 등록해 타임이나 뉴스위크 등을 읽는 성인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수준 높은 참고서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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