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04…아메아메 후레후레 (3)

  • 입력 2004년 2월 18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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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사수는 회전식 탄창을 돌리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새 총알을 한 발씩 엄지손가락으로 밀어 넣었다. 빛이란 빛을 모두 쏟아 부은 듯한 길에 눈썹을 찌푸린 청년은 땀으로 눅눅한 경찰모를 허리춤에 차고, 초록색 울타리 너머로 수영장의 물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사람을 쏘는 것보다 수영이나 하는 게 좋을 텐데…수영…수영? 40분 정도 걸어가면 소나무 가로수가 아름다운 송도 해수욕장이 있지만,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하물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니, 스무살이 넘어서도 부모에게 기댈 수 있는 경남상고 도련님이나 그럴 수 있지, 허, 제2의 크렘린이라고 할 정도니 참 대단한 신분이다.

청년은 보리밭 한가운데를 질러갔다. 머릿속에서 신기루 같은 빛이 반짝거리고, 머리와 상반신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로 도망친 거야? 제대로 안 맞은 건가? 그냥 스치기만 했나? 설마! 스친 정도로 그렇게 피를 흘렸을 리는 없지, 맞았어, 분명 맞았어. 그럼, 왜? 왜 없는 거야? 그 담에서 500미터나 뛰어왔다. 어딜 맞은 거지? 허리? 엉덩이? 다리? 어디에 맞았든 이렇게 멀리까지 뛰어올 수는 없다. 혹시, 민가에서 숨겨줬나?

어제 작전회의에서 본 지도에 보리밭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면 저수지가 있었는데, 저수지라기보다는 늪이다. 삼나무의 커다란 그림자 속에 쓰러져 있는 하양과 검정과 살색 덩어리가 보인다. 무더위와 긴장 탓에 색깔과 형태가 뒤섞여, 잠시 무엇에 다가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빨간 바탕에 하얀 가로줄이 있는 러닝셔츠와 하얀 세로줄이 있는 검정 바지…경남상고 육상부의 유니폼…늪이 바로 코앞이다…뛰어들어 자살하려 한 것인가…청년은 풀썩 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자의 가슴을 베개 삼듯 심장 부근에 귀를 갖다댄다, 두근…두근…두근…두근…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두근…두근….

사수는 표적과 얼굴을 마주했다. 표적의 얼굴은 아직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 않았지만 고통에서 해방되지도 않았다. 고통의 신호를 기다리듯 입술을 꽉 깨물고 있음이 그 증거다. 사수는 8월의 열기에 싸여 표적의 심장보다 더 강하고 높게 고동치는 자신의 심장을 느꼈다. 사수는 표적의 이름을 불렀다.

이우근!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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