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 이 땅의 청년들은 나라의 개화와 독립을 위해 역사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졌다. 갑신정변(1884), 2·8독립선언(1919), 광주학생운동(1929) 등의 주역은 바로 그들, 10대 20대 청년들이었다. 이번 회 ‘젊은 리더를 위한 민주시민강좌’에서는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가 길잡이로 나서 갑신정변 등 19세기 청년들이 벌였던 사회변혁 시도가 21세기 젊은이들의 일상적 삶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 4일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파 청년들이 우정총국(郵政總局) 개국 축하연에서 일본과 연계해 청나라와 가까운 수구세력을 제거하고 근대적 개혁을 단행하려 했던 사건. 정변은 청(淸)나라의 군사 개입으로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대담 참석자들은 먼저 서울 종로구 가회로 헌법재판소 안 박규수(朴珪壽) 집터와 갑신정변 현장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우정총국(사적 제213호)을 들렀다.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손자인 개화파 박규수의 사랑방은 갑신정변의 주역들이 모여 개화사상을 싹틔운 곳이다.
#갑신정변은 요즘의 대학생 또래가 주도
▽양윤정=우정국이나 박규수의 집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네요. 국사 수업시간에는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정도만 배웠는데 박영효의 나이가 그때 겨우 스물셋, 김옥균이 서른셋으로 정변주역들이 젊었다는 사실도 새롭고요.
▽하영선 교수=강대국으로 갈수록 작은 역사적 사실(史實)을 잘 키워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고등학교에서도 국사를 안 배운다면서요?
▽양=중학교 때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때 배우고 그만이에요. 입시 위주로 수업하는데다 근현대사는 잘 다루지 않거든요.
▽하 교수=19세기 최대 사건 중 하나인 갑신정변은 결과적으로 좌절됐습니다. 청나라를 치기 위해 일본을 끌어들임으로써 친일과 연계됐다는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근대국가 형성을 위한 중요한 시도였던 것만은 틀림없어요. 지금의 대학생 또래 청년들이 주도했다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 여러분이 당시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홍지연=서양학문을 공부하며 이를 알릴 기회를 찾았겠지만 갑신정변 주역들처럼 ‘행동’에 나서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19세기의 386세대와 21세기 386세대
▽하 교수=요즘 학생들은 주로 무엇에 관심이 많죠?
▽양=대다수는 입시와 연예계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요. 인터넷 사이트에 고등학생들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커뮤니티가 있는데 이런 학생은 너무 앞서가는 특이한 아이들로 여겨져요. 영화, 게임, 쇼핑 같이 재미있는 일도 많은데 괜히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지 말자는 분위기죠.
▽유성율=대학생은 취업의 부담감에 짓눌려 한숨만 내쉬고 있어요. 때문에 학생회에서도 기업 인턴프로그램 도입, 취업설명회 유치 등에 주력하게 됩니다.
▽하 교수=갑신정변의 주역들은 ‘19세기의 386’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신(新)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보려 했는데 지금의 386에게는 이런 ‘신사상’이 있는지 의문이에요. 연예인 말고 한국 젊은이들의 생각이나 사상이 세계, 아니 아시아에서라도 공유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유=지금 매우 다양한 가치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젊은 세대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비전이나 이슈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곽현=시민사회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수출이 가능할 것 같아요. ‘총선연대’ 등 한국의 시민사회는 중앙집권적으로 무언가를 바꾸는 건 아주 잘 합니다.
▽하 교수=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 때 새로운 세계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청년’이란 용어가 만들어졌고, 이후 정치적 색채가 완전히 탈색된 ‘소년’이란 말이 등장했지요. 일본이 19세기에 ‘청년’을 탄생시켰다면 지금 한국에서는 ‘21세기 청년’의 탄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유=하지만 지금은 세대가 아닌 관심 영역별로 이슈를 제기하고 끌어가는 것 아닌가요? 물론 주축은 20, 30대인 경우가 많지만요.
▽하 교수=19세기 청년들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설픔 때문에 실패했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런 생각이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어요.
#개인적 고민과 사회적 과제
▽홍=고시, 취업의 망령에 사로잡혀 대학 사회가 상상력을 잃어가는 게 안타까워요.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실천하고픈 신념이 있으면 사회분위기가 어떻든 자신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곽=저는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 늘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는 일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직업도 되고 사회적으로 의미도 있는 일들이 많이 개발돼야 해요. 예를 들어 대학 졸업 후 귀농한 사람들을 보면 생계활동인 농사도 잘 짓고 지역사회를 일구는 데도 힘을 쏟거든요.
▽하 교수=19세기 청년의 화두는 자주, 독립이었던 데 반해 21세기 청년들이 취업, 개인 문제로 회귀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중요한 건 개인적 고민과 사회적 과제를 아울러 논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세대가 탄생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변혁에 열정을 지닌 현재의 386과 구체적 현실감각을 가진 그 후배세대들이 결합한 ‘한국 청년’ 세대에 나라의 운명이 달렸다고 생각해요. 386세대의 강렬한 자아비판과 이후 세대들의 폭발적 역동성이 결합돼야 해요.
정리=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역사속 한국청년’이 쓴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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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일록(김옥균 저·조일문 역·건국대출판부·1977)=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1851∼1894)이 정변 실패 후 일본에 망명해서 쓴 수기. 젊은 개화파들이 꿈꿨던 근대국가의 모습과 그들의 꿈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들이 외세활용에 실패하고 국내 정치세력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 휘말리면서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작 1884년.
▽서유견문(유길준 저·채훈 역·명문당·2003)=19세기 한국의 대표적 개화지식인이자 관료였던 유길준(1856∼1914)이 갑신정변 후 연금 상태에서 쓴 서양견문록. 얼핏 보면 서양문물 소개서 같지만, 행간에는 한국의 전통과 서양의 근대를 복합해 어떤 방법으로 ‘조선형 국제화’를 완성할 수 있는가 하는 개화 지식인의 고민이 숨어 있다. 제14편 개화의 등급부터 읽는 것이 좋다. 원작 1895년.
▽젊은 날의 이승만(유영익 저·연세대출판부·2002)=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이 독립협회 간부로서 정부 전복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한성감옥에 수감됐던 시절(1899∼1904)에 썼던 ‘옥중잡기’를 번역. 당시 열혈청년이었던 젊은 이승만을 꼼꼼하게 추적해 기록했다.
▽백범일지(도진순 주해·돌베개·1997)=한국독립운동의 거목 김구(1876∼1949)가 두 아들에게 들려주는 독립운동군 아버지의 삶. 한국근현대사의 부침 속에서 파란만장하게 전개되는 김구의 한평생을 본인의 목소리로 직접 듣다 보면, 한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보는 듯하다. 원작 1947년.
추천=하영선 교수
▼참석자▼
곽현씨(36)=환경정의시민연대 정책실장
유성율씨(28)=성균관대 행정학과 4학년·2003년 성균관대 부총학생회장
홍지연씨(25)=서울대 외교학과 대학원생
양윤정양(18)=대원외고 2학년·학생회장
▼다음주의 ‘新아크로폴리스’▼
▽주제=한국전쟁은 이미 끝난 것인가?
▽강사=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에서 진행 중인 공개강좌는 안민포럼(www.thinknet.or.kr)으로 문의 바랍니다. 02-743-1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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