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연하의 아내를 철부지로 무시하고 첫날밤 의식도 미뤄온 남편이 드디어 사랑을 고백한다. 23일 방송될 KBS2 TV 월화 미니시리즈 ‘낭랑 18세’(밤 9·50) 11회의 끝 장면이다. 시청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의 합방은 12회에서 이뤄진다.
할아버지 대(代)의 정혼(定婚)으로 얼굴 몇 번 보고 결혼한 18세 불량소녀 윤정숙(한지혜 분)과 28세의 엘리트 검사 권혁준(이동건 분). 억지 중매결혼을 애틋한 연애담으로 키워가는 ‘낭랑…’이 시청률 경쟁에서 선전하며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낭랑…’의 평균 시청률은 15%대. 같은 시간대 MBC ‘대장금’과 맞붙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만찮은 기록이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대장금’은 30, 40대 여성이, ‘낭랑…’은 19세 이하 소녀들이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시청자들이 TV로는 ‘대장금’을 보고 인터넷 등으로 ‘낭랑 …’을 보기 때문에 ‘낭랑…’의 체감 시청률이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KBS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16부작 낭랑을 연장 방송하라’ ‘재방송도 보게 해 달라’는 ‘낭랑 폐인(마니아)’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낭랑…’의 첫째 미덕은 드라마의 주제가 ‘낭랑18세’처럼 빠르고 경쾌한 전개다. 남녀 주인공은 첫 회에서 만나 혼담을 주고받고 4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정숙과 혁준 부부가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좌충우돌도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철없는 주부 윤정숙이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다가 주민들과 다투는 에피소드도 웃음을 자아낸다.
‘낭랑…’은 만화같이 캐릭터가 과장돼 있다. 특히 한지혜의 ‘오버 연기’는 이 드라마의 흥행 요소 중 하나다. 한지혜는 극중에서 이단 옆차기로 폭력배를 날려 버린다. 이에 질세라 권혁준은 오락실에서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레오처럼 폼을 잡는다.
무엇보다도 ‘낭랑…’은 ‘정혼’과 ‘종가(宗家)’로 상징되는 보수적 이야기 전개로 시청자들의 내면에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극의 주인공들은 분명 ‘불온한’ 청춘들인데도 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현실적으로 순종한다. 권혁준은 안동 권씨 종손임을, 윤정숙은 파평 윤씨 문정공파 37대손임을 외고 또 왼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는 이에 대해 “종가라는 이미지에 대한 동경은 가족 해체가 진행되는 불안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방지축 윤정숙은 또 남편의 첫사랑에 대해 투기하지 않는다. 권혁준도 미모의 변호사인 첫사랑을 잊고 마음에도 없는 정혼녀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런 남편상은 신여성과의 사랑을 위해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기도 했던 20세기 초 ‘모던 보이’들에 비하면 퇴행적으로 비친다.
이들 부부의 유일한 갈등 요인은 윤정숙과 권혁준의 학벌 차이. 이마저도 윤정숙이 출산 후 남편과 유학을 떠나는 것으로 해소된다. 결국 윤정숙 권혁준 커플은 사랑 없이 중매결혼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혼자 힘으로 무엇을 이뤄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불황의 시대. 기대하지 않던 번듯한 정혼자를 만나 든든한 종가에 기대고 싶은 연약한 청춘의 심리가 이 드라마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여주인공 한지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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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이 있는 큰 눈은 여자 연기자들의 필수 조건. 쌍꺼풀을 가진 눈은 매력적으로 비치고 TV 화면에도 잘 나온다고 방송 관계자들은 말한다. 여자 연기자 중 쌍꺼풀이 없는 배우는 영화 ‘서편제’의 주연 오정해 외에 찾기 어렵다.
그런데 ‘낭랑 18세’의 여주인공 한지혜도 쌍꺼풀이 없다. 소속사도 “눈은 절대 손대지 말라”고 엄중 경고했다고 한다. 쌍꺼풀 성형 미인이 흔한 세상에서 쌍꺼풀 없는 눈이 희소가치와 경쟁력이 있다고 본 것. ‘낭랑 18세’처럼 시댁 어른들의 호감을 사야 하는 종가 며느리의 배역에는 쌍꺼풀 없는 눈이 더 어울린다는 분석도 있다.
민병두 참성형외과 원장은 “한지혜는 광대뼈와 턱 부분이 발달해 넓적한데다 오른쪽 뺨 중앙에 보조개처럼 움푹 파인 흉터가 있어 전형적 미인은 아니지만 친근감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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