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 송수남 화백 회고전…묵묵히 걸어온 墨道 50년

  • 입력 2004년 2월 19일 21시 53분


남천 송수남(南天 宋秀南·65)의 회고전에서 첫 번째 만나게 되는 그림은 그가 꼭 50년 전에 그린 수채화다. 고교 2년 때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전북 전주의 ‘경기전(慶基殿)’을 묘사한 것이다. 남천은 “이 그림을 보면 6·25전쟁 직후 너나없이 살기 힘들었던 시절, 스승으로부터 받은 일제강점기 물감과 수채화 물통을 들고 배고픔을 참아가며 사생하던 일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수묵화가 남천이 화업 50년을 정리하는 회고전을 20일부터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갖는다. 변화로 점철된 50년간 한국 미술계 안에서도 수많은 장르와 재료들이 오갔지만 남천은 평생 먹이라는 재료 하나로 수묵 외길을 걸어 왔다.

“회고전을 준비하며 그림들을 정리하다 보니 최근 것보다 젊었을 때 그린 것들에 더 애착이 갑니다. 오로지 그림 하나에 목숨 걸며 매진했던 기억을 되살리면 지금도 등에 땀이 나죠.”

1층 전시장에 걸린 1950∼70년대 구상 작품들에서는 국토의 산하를 수묵담채로 표현한 작가의 묘사력이 돋보인다. 이어 2층 전시장의 작품들에는 오로지 먹이 한지 위에 번지고 스며드는 근본과정에 주목해 줄긋기, 선긋기로 추상화한 작가의 실험과 도전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에 붉고 푸른색을 과감하게 끌어들인 1960년대 추상 채색 산수에서 70년대 관념적 산수와 장식적 산수를 거쳐 80년대 흑백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평원(平原) 구도로 변화해 왔다. 이때부터 그의 작품은 ‘남천산수’라는 이름으로 주목을 끌었다. 빼곡한 선 획과 반복으로 가득한 화면을 구사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 신작은 “작위적 수단은 찾을 수 없고 무심코 그려나간 행위의 무상성만 기념비적인 공간을 일구어 내고 있을 따름”(미술평론가 오광수)이라는 평을 얻었다. 작가의 홍익대 미대 교수 정년퇴임 기념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3월 14일까지 열린다. 02-720-1020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남천의 1979년 작인 ‘장강’(왼쪽)은 먹의 농담만으로 흑백과 음영을 표현한 관념 산수. 먹이 한지 위에 번지고 스며드는 근본 과정에만 주목한 것으로 남천의 작품세계 변화에 주요 역할을 한 작품이다. 고교 2년 때인 1954년에 그린 ‘전주 경기전’은 그의 50년 화업 인생에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