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클럽이 움직인다]<3>말러 동호회 '말러리아'

  • 입력 2004년 2월 24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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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병원 건물의 지하에 있는 음악감상실 ‘신포니아’에 들어서자 거리에서 격리된 듯한 별세계가 펼쳐졌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 애호가 모임인 ‘말러리아’ 모임. 김문경씨(32·서울대 제약학과 박사 과정)의 해설로 말러와 후배 음악가 알반 베르크(1885∼1935)의 작품세계를 비교하는 감상회가 한창이었다.

“마치 먼지처럼 흩어지는 리듬, ‘말러 유전자’를 분명 여기서도 느낄 수 있죠?” “잠깐, 다른 교향곡에도 그런 부분이 등장하는 것 같은데요….”

13명의 ‘말러리안’들은 말러의 악보 곳곳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말러리아’의 창립은 2001년 4월. 1999년 시작해 2003년에 끝난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가 계기가 됐다.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부수석으로 이 연주 시리즈에 참가한 최은규씨(34)가 주역이었다. 그는 ‘천리안’ 고전음악 동호회도 주도하고 있었다.

“주변의 ‘말러광’들이 부추기더군요. ‘때가 됐다’고. 말러광들이 말러의 음악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자는 것이었지요.”

‘말러팬’을 뜻하는 ‘말러리안(Mahlerian)’에서 ‘n’을 뺀 ‘말러리아’는 말러에 대한 열병 같은 열정을 상징한다. 20여명의 회원은 한 달이 멀다하고 모였다. 해외 지인을 통해 말러의 ‘정본(正本)’악보를 구하는 열성은 이야깃거리가 안 될 정도다. 임헌정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6번 교향곡 연주를 앞두고 말러리아에게 ‘4악장의 해머(망치) 타격이 몇 번 나오는 것이 옳으냐’고 자문을 하기도 했다.

회원들은 말러에 대해 각각 특기가 있다.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인 박종임씨(36)는 말러 연대기와 일본에서 나온 문헌에 정통하다. 김문경씨는 말러의 후배인 아널드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 등 ‘신(新) 빈악파’ 전문. 회사원인 정민재씨(33·서울대 미생물학과 박사)는 말러 음반의 최고 수집가이고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을 나온 이정엽씨(26)는 말러 시대의 문화에 해박하다.

최은규씨는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시리즈는 끝났는데도 ‘말러리아’에는 주제 발표 희망자가 줄을 이어 모임 횟수를 늘려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부천 필의 말러 교향곡 전곡 시리즈가 막을 내린 2003년 11월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로비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최은규씨(왼쪽에서 다섯번째)를 비롯한 ‘말러리아’ 회원들이 임헌정 부천 필 음악감독(왼쪽에서 여섯번째)과 자리를 함께했다. -사진제공 부천시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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