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강 건너 계곡 질러 바다로…청량리~강릉 기차여행

  • 입력 2004년 2월 25일 17시 36분


코멘트
청량리와 강릉을 오가는 열차는 한강과 백두대간 산악, 그리고 동해를 지난다. 차창 너머로 다채로운 풍광이 펼쳐져 그저 타기만 해도 즐거운 여행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청량리와 강릉을 오가는 열차는 한강과 백두대간 산악, 그리고 동해를 지난다. 차창 너머로 다채로운 풍광이 펼쳐져 그저 타기만 해도 즐거운 여행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어느 휴일 아침. 갑자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졌다. 늦잠도 잘 만했지만 희한하게도 평소 많던 아침잠이 휴일에는 오히려 사라지니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찾은 곳이 청량리역. 12시 강릉행 열차(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이 열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열차바퀴만큼이나 많을 터. 내 경우는 이렇다. 플랫폼에서 출발 직전의 기차 시트에 몸을 묻고 차창 밖으로 부산히 오가는 여행객 모습을 바라볼 때의 여유, 그리고 스르르 미끄러지는 기차의 은근한 출발과 이때 창 밖으로 서서히 밀려나는 플랫폼 풍경을 보는 재미를 즐긴다.

정시에 출발한 기차. 느릿느릿 전철 오가는 시내를 통과해 어느새 한강을 지난다. 덕소 팔당 능내역 지나니 남과 북 두 한강 하나되는 두물머리(양수리)다. 북한강 철교 건너면 양수역. 예서 남한강 물길 끼고 달리다 양평에서 강을 버린다. 이제 중앙선 철로는 산을 가르며 원주를 거쳐 치악산 지나 제천으로 치닫는다.

중앙 태백 두 철로의 갈림길 제천. 강릉행 열차는 태백선으로 갈아타고 동진한다. 앞으로 지날 곳은 영월 정선 태백의 탄광지대. 그리고 태백을 벗어나면 마침내 반도 산악의 우두머리 줄기인 백두대간을 스위치백 터널철도로 가로질러 관동땅 강릉으로 갈 터. 경동지괴(傾動地塊·동고서저의 지형)의 그 험로가 비로소 시작될 참이다.

단종을 가둔 물돌이동 청령포를 거쳐 영월역을 지난 기차. 무정차 통과한 석항역을 지난 뒤부터 좁고 험한 계곡을 비집는다. 예서부터는 정선땅. 태백까지 철도변 산골마을은 대부분 탄광촌이다.

역사마다 쌓인 탄더미가 산을 이루고 그 석탄 실어 나르던 화물차는 철로에서 긴 잠에 빠진 지 오래. 슬레이트 지붕도, 블록담도 석탄가루 엉겨붙어 시커멓게 변한 납작지붕 탄광촌으로 싸라기눈이 바람 타고 흩날린다. 탄광촌은 폐광촌으로, 돈더미 석탄은 애물단지 탄가루로 바뀐 지 오래. 그래도 거기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치열하다.

계곡이 어찌나 깊은지 차창으로 뵈는 하늘이 한 뼘 크기도 안 된다. 예미역은 철도변까지도 온통 숯검정빛 땅이다. 탄광촌 분위기가 가장 짙게 느껴지는 역이다. 계곡 하천을 끼고 달리는 기차가 점점 산중턱으로 올라가더니 내내 산허리를 탄다. 저 아래로 물을 끼고 달리는 38번국도변 함백탄광의 폐광촌 마을이 보인다. 마치 헬리콥터를 타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만큼 철도와 강 사이의 격차가 크다.

열차는 산을 오르는 듯 숨소리가 거칠다. 터널이 수시로 나타나고 계곡도 부산스레 열차 좌우를 오간다. 산이 깊어짐을 알리는 이런 풍경의 변화. 수리재터널 지나 자미원역에 이르니 ‘해발 688m역’이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태백시)의 높이가 855m이니 기차는 앞으로도 167m를 더 올라야 한다.

4분 후 도착한 곳은 증산역. 계곡 안 너른 평지의 역은 이제껏 지나온 작은 탄광 역에 비하면 서울역 규모다. 이곳은 정선선의 출발역. 통일호(한칸 꼬마열차)가 오후 6시에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싸락눈이 철로변에 쌓아둔 검은 갱목더미에 앉는다.

증산역을 출발한 무궁화호가 내리막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왼편 계곡에는 거대한 교각공사가 한창이다. 폐광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38번국도 직선화 공사다. 철로는 오르막으로 변하고 온통 탄 빛깔로 변한 축대 위 철로는 사북 역으로 이어진다. 강원랜드 카지노가 들어선 뒤 고층 모텔만 우후죽순 들어서는 사북역 부근. 철로 반대편 산기슭의 동원탄좌에서는 지금도 채탄이 계속된다. 플랫폼에 전시된 탄광갱차가 한때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탄광촌의 신화를 상기시킨다.

이어지는 고한역. 강원랜드 스키장(2005년 12월 개장 예정) 현장사무소를 지난다. 그 담에 하얀 스키장 그림이 그려져 있다. 검은 탄광지역에 하얀 스키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석탄 화물차 대신 스키열차 다닐 날이 기다려진다.

태백으로 향하던 열차가 긴 터널로 빨려 들어갔다. 국내에서 두번째로 긴 정암터널(4505m)이다. 터널 밖의 추전역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역이다.

이렇게 차창 밖 풍경을 보며 즐기는 하루 기차여행. 해변의 정동진역을 지나 강릉역에 도착해 바다를 보고 돌아오면 하루가 빠듯하다. 그래도 모처럼 학창시절 좋아했던 음악을 들으며 추억의 상념에 젖어 가는 겨울 하루해를 보내는 맛도 괜찮다. 열차여행의 매력이란 이런 것 아닐까.

●여행정보

◇철도여행 안내 △전화=철도고객센터 1544-7788 △인터넷=철도청 www.korail.go.kr


정선=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