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최근 김 목사의 전기를 펴내면서 김 목사의 사촌동생 김대전씨에게서 입수한 이 사진을 공개했다.
김 목사는 임정 부의장과 의장 및 재무차장, 내무차장, 학무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47세에 병사하는 바람에 그 공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가 1993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유해가 봉환된 후 새롭게 항일운동 업적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1920년경 상하이의 한 사진관에서 촬영된 이 사진에는 8명이 등장한다.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이 김 목사이고 그 오른쪽에 모자를 쓴 이가 여운형이다. 김 목사의 왼쪽에 앉아 있는 이는 의정원 의원을 지낸 김갑수, 맨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나중에 조선중앙일보 전무가 된 윤희중(尹希重)이다. 왼쪽 끝에서 두 번째 인물은 초대 의정원 의원이며 훗날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유정 조동호(榴亭 趙東祜). 다른 두 명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여운형 윤희중 조동호는 훗날 중앙일보를 인수해 조선중앙일보를 창간한 주역”이라면서 “김 목사가 이들과 사진을 함께 찍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적 편린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출간된 전기에서는 김 목사가 1906년 고향인 충남 서천에 세워진 중등과정 교육기관 한영(韓英)학교의 실질적 설립자였던 점, 또 임정 직할 학교였던 상하이 인성학교 교장과 한중 항일지도자간 친선단체였던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의 한국측 대표를 맡았다는 점 등이 새롭게 밝혀졌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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