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살아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 연주한다, 내일의 희망을…

  • 입력 2004년 2월 26일 16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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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음악을 고집하는 그들.몬테깔로에서 공연중인 나이트 밴드 '식스티나인', 홍익대 앞 롤링스톤즈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언더밴드 '럼블피쉬', 2집 정규 음반을 내고 활동에 들어간 호러 록의 효시 '레이니 선'의 공연 모습(위쪽부터).

살아있는 음악을 고집하는 그들.몬테깔로에서 공연중인 나이트 밴드 '식스티나인', 홍익대 앞 롤링스톤즈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언더밴드 '럼블피쉬', 2집 정규 음반을 내고 활동에 들어간 호러 록의 효시 '레이니 선'의 공연 모습(위쪽부터).

이달 초 서태지의 콘서트 현장. ‘밴드의 부활’을 외치는 그는 늘 그래왔듯 신예밴드들과 함께 라이브 무대를 열었다.

올림픽체조경기장을 가득 메운 1만여 관중 속에는 무대 위에 오르지 못한, 이름 모를 밴드멤버들도 적지 않았다. 무대 위의 밴드들과는 얼마 전까지도 함께 클럽을 전전하던 친구나 선후배 사이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객석은 헤드뱅잉, 점핑, 보디슬램 물결로 어지럽게 출렁거린다. 무대 아래의 무명밴드 멤버들도 조금씩 몸이 움직인다. 입으로 ‘밤바밤바바’ 되뇌던 드러머의 손은 어느덧 가슴팍까지 올라와 흥겹게 리듬을 탄다. 허벅지 부근에서 손가락만 퉁기던 기타리스트도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무대 위와 무대 아래서 ‘밴드’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말하는 음악세상 이야기.

○ 홍대앞 클럽의 밴드들

‘언더밴드의 메카’ 홍익대 앞엔 소규모 공연시설이 갖춰진 클럽이 10여개 몰려 있다. 윤도현밴드, 자우림, 크라잉넛 등이 탄생한 이곳엔 ‘그저 음악이 좋아서’라며 모인 언더밴드가 수백 팀이나 된다.

한 클럽에서 4인조밴드 ‘럼블피시’를 만났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한국록 챔피언십 대상을 비롯해 한 해 동안 4개의 록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화려한 경력에 비해 생활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연습실이 없어 다른 3개 밴드와 함께 영등포 주택가 지하실을 빌려 쓴다.

팀 리더 김성근씨(31)는 “하루 8시간 이상 날카로운 기타 줄과 싸워야 하지만 힘들어 할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이들처럼 중고교 때부터 음악을 시작한 실력파 밴드가 400여 팀은 족히 된다. 이 때문에 어지간한 수상 경력은 자랑거리도 아니다.

홍익대 앞 클럽들은 요일별, 시간별로 공연시간이 한정돼 있어 한 주에 2시간 정도 기회를 얻는다. 그나마 감지덕지다. 200여팀 정도만이 공연기회를 갖는다.

그들에겐 음반제작도 언감생심이었다. 비정규 미니앨범도 제작비만 200여만원이 든다.

그런데 최근 한 음반기획사로부터 앨범제작 제안을 받았다. 김호일씨는 “이제 제대로 된 카레라이스를 먹을 수 있게 됐다”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 제2의 연예계-밤무대

흔히 ‘밤무대’로 불리는 성인나이트에서는 30, 40대 중견 음악인들이 8명 이상의 대규모 밴드를 이끌며 인기가요나 팝송을 연주한다.

97년 솔로앨범을 내고 방송 활동도 한 가수 출신 김수현씨(29). 그는 얼마 전 성인나이트 ‘몬테깔로’의 메인밴드 오디션에 합격했다. 서울 강남에서 ‘잘 나가는’ 성인나이트의 메인밴드의 멤버가 된 그는 이제 ‘업계 스타’다.

이곳 A급 밴드의 수입은 한 달에 수천만원대. 이를 멤버들이 나누어 갖지만 적어도 대기업 사원보다는 높은 전문직 수준이다. 물론 수입이 전부는 아니다. 대형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운이 따르면 대중가수로 발탁되기도 한다.

이곳 밴드 멤버들 역시 이력이 화려하다. 홍익대 앞 클럽 밴드나 유명가수 밴드 출신들이 대부분. 해외유학파, 정규앨범을 낸 가수 출신도 많다. 그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분출할 수 있기 때문. 미국 맨해튼의 재즈클럽 드러머 출신인 전창현씨(32)는 “매일 청중을 접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말했다.

이곳도 ‘연예산업’의 손길이 점점 뻗쳐오고 있다. 실력보다는 외모가 중시되고 있는 것. 밴드의 또 다른 보컬 곽화윤씨(30·여)는 “예쁘고 쇼맨십이 좋은 사람이 무대에 서고 노래는 ‘알바’를 뽑아 녹음을 한다”며 ‘립싱크 가수’가 성행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 굽히지 않는 자존심

90년대 말 ‘호러 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던 4인조 언더밴드 ‘레이니선’. 그들이 음악을 맡은 영화가 스위스 프리부르 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해 국제적인 주목도 받았다. 그러나 1998년 1집 발표 후 지금까지 방송출연은 딱 2번. 립싱크를 선호하는 방송 풍토 때문이다.

정윤택씨(30·베이스)는 “라이브 음악은 인력과 시간이 훨씬 많이 들기 때문에 방송국들이 꺼린다”며 “음악 프로그램이 점점 볼거리를 제공하는 쇼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차식씨(31·보컬)도 “더 이상 밴드가 노래할 곳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젊은 밴드들이 실력을 겨루던 강변가요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음악제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결성 12년째인 그들은 올해 2집 앨범을 내고 다시 본격 활동에 나선다. 하지만 라이브 연주가 가능한 프로그램에만 출연하겠다는 의지는 변함이 없다.

“라이브의 묘미가 뭐겠어요. 생방송하다가 기타줄이 끊기기도 하고, 그게 살아있는 음악이잖아요.” 이 밴드 기타리스트 김태진씨(29)가 “음악이 가진 ‘자유’의 의미를 지키겠다”며 목청을 높인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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