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사마리아'…누가 돌을 던지나

  • 입력 2004년 2월 26일 17시 01분


'사마리아'에서 원조교제 섹스는 사회적 범죄가 아니라 속죄의 제의로 그려진다. 사진제공 쇼이스트

'사마리아'에서 원조교제 섹스는 사회적 범죄가 아니라 속죄의 제의로 그려진다. 사진제공 쇼이스트

제54회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10번째 영화 ‘사마리아’가 24일 국내 언론에 공개됐다. 5억원이 채 못 되는 제작비를 들여 11일 만에 촬영을 마친 이 영화의 정체는 ‘아주 슬픈 코미디’였다.

영화를 보기 전 두 가지 편견을 버려야 한다. 첫째는 도발적인 포스터와 달리 섹스 장면이 없다는 점, 둘째는 편협하고 히스테릭했던 김 감독이 훨씬 ‘정상적’이 됐다는 점이다. 그의 일보 전진인 동시에 일보 후퇴다.

여고생 여진과 재영은 유럽여행 갈 돈을 모으려고 원조교제를 한다. 여진이 남자들과 채팅으로 약속을 잡으면 재영이 모텔로 들어가 섹스를 한다.

여진은 원조교제를 마친 재영을 목욕탕에 데려가 씻겨준다. 남자들을 불결하게 생각하는 여진은 낯선 남자들과의 일회성 섹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재영을 이해할 수 없다. 어느 날 재영은 경찰을 피해 모텔에서 뛰어내리다 여진이 보는 앞에서 죽는다. 여진은 재영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재영이 만났던 남자들을 차례로 만나 섹스를 하고 받았던 돈을 돌려준다.

남자들은 평안을 얻는다. 여진의 아버지이자 형사인 영기는 사건현장에 나갔다가 딸 여진이 모텔에서 남자와 나오는 장면을 목격한다.

“고마워요. 행복하게 해줘서.”(섹스를 막 끝낸 남자) “내가 더 고마워요.”(여진) “죽을 때까지 널 위해 기도할게.”(남자)

여고생과 섹스를 막 마친 남자가 내뱉는 성(聖)스러운 언사라니…. 그 뻔뻔스러움이 스크린을 찢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영화 속 섹스는 쾌락인 동시에 속죄의 세리머니다.

남자는 진지하고 평화롭지만, 관객은 웃지 않을 수 없기에 더 슬프다. 스크린 속 인물들이 벌이는 속죄와 용서의 언사를 관객은 난센스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시추에이션 코미디’가 발생한다. 그것이 ‘사마리아’를 가로지르는 문법이다.

‘나는 진지하게 속죄하는데→너는 나를 웃기게 본다→그런 너의 모습도 누군가가 우습게 보진 않을까?→따라서 우리 모두는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고 영화는 말한다.

“인도에 ‘바수밀다’라는 창녀가 있었어. 그런데 그 창녀랑 잠만 자고 나면 남자들이 모두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된대. 날 바수밀다라고 불러줄래?”(재영이 여진에게)

베를린영화제가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를 감안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배우들의 연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행인들의 모습까지 여과없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은 초저예산 영화에 대해 베를린영화제가 ‘용서’해야 했던 부분인 것이다.

김 감독은 과거 ‘과잉의 폭력과 섹스’로부터 이제 ‘과잉의 깨달음’으로 관심사를 바꾸고 있는 것 같다. 시사회장에서 그는 “내가 자만에 빠지지 않고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비판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자만해 질 수는 없을까. 논쟁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다음달 5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주연 곽지민 인터뷰▼

영화 ‘사마리아’의 곽지민(20). 지난해 이 작품을 촬영할 때 그는 고교생이었다. 곽지민은 완성된 영화를 14일 베를린영화제 시사회 때 처음, 그리고 24일 시사회를 통해 두 번째 봤다고 했다.

―영화를 본 느낌은 어떤가.

“아직도 ‘사마리아’의 여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마리아’는 원조교제를 다루고 있다. 출연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 시나리오를 보며 여진의 노출 장면 때문에 출연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출신이 빠진 시나리오를 갖고 감독님이 다시 찾아왔다. 돈 때문에 원조교제를 시작한다는 게 아니라 친구의 죽음과 상처가 있었다. 그래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김기덕 감독은 이전에 알고 있었나.

“솔직히 영화를 찍기 전에는 감독님의 작품을 한 편도 못 봤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빼고는 모두 ‘18세 이상 관람 가’였다. (웃음) 캐스팅이 되고 나서 엄마에게 부탁해 ‘나쁜 남자’를 봤다.”

―촬영 전 김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어땠나

“다른 영화감독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기괴, 극단, 폭력, 여성학대…. 그래서 여성들이 싫어하는 감독인가 보다 했다.”―촬영하면서 그 이미지는 그대로였나 “사실 촬영 전엔 겁을 먹었다. 감독님이 독단적이고 무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나를 힘들게 한 일은 없었다.”

―김 감독의 감독상 수상을 알고 무슨 생각을 했나.

“감독님이 서울에 도착한 뒤 휴대전화로 ‘감독상 타시게 된 거 축하드려요 ★★★’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별 다섯이 아니라 셋인가(웃음).

“그때는 그냥 그랬다. 답신은 받지 못했다. 감독님이 아마 문자 메시지로 답신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웃음)

―‘사마리아의 곽지민’이라는 레테르가 계속 따라다니게 됐다. 앞으로 계획은….

“올 2월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13일 20세가 됐다. 12일의 고교 졸업식에는 베를린에 있느라 참석 못했다. 영화 찍느라 대학에 떨어졌다. 공부도 하고 배우도 되고 싶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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