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박태준 회장님도 계시고, 삼성 이회장님은 바빠서 못 오신답니다.”
재계 거물들이 25일 오전 8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MBC 라디오 녹음실에 모였다. MBC 라디오의 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 50’년 녹음을 위해 배역을 맡은 성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격동 50’년은 다음달 1일부터 ‘하면된다-해외에서 피운 꿈’을 통해 1960, 70년대 경제 개발을 주도했던 경제 각료와 재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경제 현대사를 다룬다.
성우 김종성씨의 해설과 함께 20여명의 성우들이 각자 맡은 배역의 목소리를 흉내내 명연기를 펼쳤다. 눈을 감고 들으면 감쪽같이 박정희 대통령이고 정주영 회장이다.
‘격동 50년’은 1988년 4월 1일 첫 방송을 탄 뒤 1년간 방송이 중단된 것을 빼면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MBC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 시작 당시 타이틀은 ‘격동 30년’으로 1960년 4·19 혁명 이후 정치 현대사를 다뤘다.
정수열 PD는 “지난해 9월 대우 사태를 다루면서 경제 다큐로 방향을 선회했다”며 “우리 경제가 정체 상태에 빠진 원인과 다시 회생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아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면 된다’에서는 △60년대 외화 벌이를 위해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 이들의 월급을 담보로 서독서 차관을 들여온 이야기 △월남 특수로 자본을 축적한 한진그룹과 여기서 벌어들인 외화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과정 △중동 건설 특수를 누린 현대그룹 △빠른 정보력으로 무역업에서 두각을 드러낸 삼성과 사카린 밀수사건 등을 다룬다.
특히 광부와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서울시내 교사 초임이 1만5000원이던 시절, 서독 광부의 월급은 162달러 50센트(당시 환율로 약 4만2000원)였다. 지원 자격은 중졸 이상이었지만 대졸자들도 몰려들었다. 1963년 9월 123명의 1차 서독 파견 광부 명단이 확정됐을 때 언론은 고시 합격자를 보도하듯 명단을 실었다. 경쟁이 치열한 탓에 급행료도 생겼는데 당시 시세는 10만원.
서독으로 떠나는 김포공항에서도 새치기가 성행했다. 서독에 광부를 지원했던 KBS 이종수 이사장도 당시 두 번이나 헛걸음을 하고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정 PD는 ‘격동 30년’을 처음 기획한 이로 이 프로그램을 떠난 지 10년만인 지난해 9월 복귀했다. 극본은 방송작가 김광휘씨(63)가 맡았다. 김씨는 노태우 대통령의 연설문을 1년 가까이 썼고 여러 중진 정치인들의 자서전을 대필한 ‘유령작가(Ghost Writer)’이다.
이 드라마에서 육영수 여사는 탤런트 고두심씨가 연기한다. 고씨는 ‘격동 30년’ 시절부터 육 여사의 목소리를 맡아왔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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