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허문명/'문화권력' 의 항변

  • 입력 2004년 2월 26일 19시 10분


23∼25일 4면에 실린 기획 ‘주류가 바뀐다’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몰아닥친 ‘주류(主流) 교체’의 파도가 1년 만에 우리 사회 각 분야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점검한 시리즈였다.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보도된 ‘판갈이’의 양상은 종합해 놓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특히 문화계는 제도권 밖에 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제도권 한가운데로 진입한 경우가 많아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보도 이후 기사에 언급된 일부 단체와 인사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마디로 “우리가 왜 주류이며 문화권력이냐”는 항변이었다. 한 문화단체 관계자는 “우리가 부도덕하고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주류’나 ‘권력’이란 말 자체가 ‘부도덕하다’ ‘제 맘대로다’와 동의어이므로 자신들을 ‘문화권력’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가 과거 기득권층과 결국 똑같다는 비판”이라고 반발했다.

이런 생각은 물론 기존 제도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개혁지향적인 성향으로 보아 이해할 수 있는 항변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의 생각이 참여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초기의 ‘아웃사이더 식’ 접근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기관장이 재야 출신 인사로 바뀐 한 문화단체의 간부는 “영입된 재야인사들은 대부분 순수하고 탈권위적”이라며 “그러나 현실감각이나 행정마인드가 부족하고, 책임감보다는 비판의식이 강해 내부 직원들까지 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현장 문화예술인들의 의식은 지난 1년간 많이 변했다. 일례로 연초 미술계 일각에서 문예진흥기금 지원이 민중계열 인사들에게 편중됐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변화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중도적 목소리가 나와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았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문제는 어떤 주류이며 어떤 권력을 행사하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제도권에 진입한 재야인사들은 자신들이 이제 그 분야의 리더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자각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비로소 문화행정 서비스의 수준도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문명 문화부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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