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도서 선택에 있어 교사들은 임상전문가들이다. 책의 내용이 아이들에게 적절한지, 재미있는지 등을 매일 관찰하고 ‘실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사는 1318세대를 위한 가장 좋은 필자일 수 있다. 베스트셀러가 된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살아있는 한국사교과서’의 성공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국정교과서의 독점적 지위가 사라져감에 따라 교사 필진의 실력이 비로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모임은 ‘양서(良書) 공장’이라 할 만하다. 여러 교사들의 좋은 수업 아이디어들만 모아놓아도 기발하고 유익한 책 몇 권은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삶의 시, 삶의 노래’도 좋은 수업을 위한 열정이 책 출간까지 이어진 경우라 하겠다.
이 책은 경기 시흥시의 정왕고교 국어교사들이 실제로 했던 시(詩) 수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는 언어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소재이다. 그러나 교육적 의도와 달리 이야기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시가 가슴까지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삶의 시, 삶의 노래’는 시가 발생학적으로 볼 때 원래 노래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시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노래는 좋아하기 마련이다. 이 책은 노랫말을 다루듯 시를 설명함으로써 자연스레 시적 재미를 일깨워 준다. 실제로 ‘진달래꽃’, 정지용의 ‘향수’와 같이 시가 노랫말이 된 경우도 많다. 노래가 되어 버린 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학생들은 시인의 감성과 비평가의 안목을 갖추게 된다. 참신한 아이디어에 훌륭한 수업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문학 소년의 심각함에서 벗어나 시를 일상에서 재미있게 누리게 하려는 시도들도 돋보인다. “붕붕붕 아주 작은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간다”라는 동요를 “개굴개굴개굴 아주 나쁜 개구리 황소개구리가 나간다”로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하는 꼭지들은 운율적 재미와 환경 의식을 동시에 일깨워 준다.
그러나 ‘출판 아마추어’들의 작품인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수업용 워크북이다 보니 책 모양이 참고서같이 되어 버린 것, 책날개가 없어서 자주 오래 열어보는 시집의 특성 상 보관하기 까다롭겠다는 점 등등은 이 책의 ‘단점’이라 할 수 있겠다. 정규 교과서가 오른쪽으로 치우쳐 보인다면 이런 대안교과서들은 왠지 왼쪽에 가깝게 보인다는 편견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시, 삶의 노래’는 좋은 수업을 위한 교사들의 열정과 고민을 담은 수작(秀作)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당장 교실로 뛰어들어가 이 책으로 수업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다. 내가 국어교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졌다. 이처럼 교사들이 쓴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서 서로 상대방 교과를 부러워하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학교 도서관 총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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