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솔직히 당혹스럽다. 표면이 긁혀 온통 상처투성이인 통나무가 하나 서 있고 그 윗부분에는 수없이 많은 못들이 박혀 있다. 그런가하면 작은 돌을 싼 붕대로 칭칭 휘감긴 통나무들이 서 있고 양 끝이 날카롭게 패인 긴 막대기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4∼31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독일 작가 귄터 위커(74·전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 교수) 전.
그의 작품은 그의 삶을 알기 전에는 곧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 ‘내 작업은 나를 위한 무기’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영혼을 정화하고 내면을 표현하는 제의(祭儀)로 생각한다. 이는 그가 전쟁, 분단, 통일이라는 독일의 드라마틱한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이력과 관련이 있다.
동독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소년시절 선동부서의 당원을 맡을 정도로 철저한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였던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우연히 이웃들의 시체 75구를 발견하고 옮기는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허무주의에 빠진다.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이념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은 체제에 대한 회의로 이어져 결국 스물세 살에 서독으로 망명한다.
어렸을 적부터 소질이 있었던 그림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그를 예술가의 길로 이끌었고 마침내 요셉 보이스, 게하르트 리히터, 백남준 등 현대 실험 미술의 세계적 거장들을 배출한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꿈을 이루게 된다.
그의 작품은 붓이나 캔버스가 아닌 못과 나무, 돌과 재(災)로 이뤄진 것이 특징. 사상적 변절과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는 “고통과 싸움으로 얼룩진 세속의 한 가운데서 치유와 정화의 상징으로 이런 소재들을 골랐다”고 말한다. 못과 돌은 성서에서 차용한 것으로 타인이나 제도로부터 비롯된 삶의 고통을 상징하며 나무는 생명, 재는 순환과 죽음을 의미한다. 간혹 등장하는 붕대 역시 치유를 위한 도구다.
나무 캔버스를 뚫고 나오는 돌멩이들을 통해 타인과의 소통에서 오는 상처를 표현한 ‘회화적인 정원’이나 동그란 나무토막을 하얗게 색칠해 점점이 흩어 놓은 ‘하얀 눈물’ 같은 작품들은 그의 명상적 세계를 대표하는 것들이다.
귄터 위커가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 그러나 세계 현대 미술시장에서 그림 값 비싸기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게하르트 리히터와 함께 현대 독일미술계의 손꼽히는 거장이다.
3일 오후 개막식에는 작가가 참석하며 그의 작품세계에서 드러나는 제의(祭儀)적 컨셉트에 맞춰 인간문화재 김금화씨가 진혼굿도 펼친다. 독일 문화예술청과 주한 독일문화원 공동 주최. 02-734-611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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