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사장의 본업은 기업인. 독일계 제약회사인 한국 베링거 인겔하임의 전 대표이며 농약 제조회사인 ㈜한국삼공의 대표다.
그는 97년과 98년 대영박물관에 총 100만 파운드(약 16억원)를 기부해 2001년 대영 박물관에 ‘한국실’이 생기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실에는 고려 범종 등 그가 대여한 미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대영박물관 개관 250주년 기념 도록(圖錄)에는 그가 기부한 돈으로 구입한 조선 백자 달 항아리가 실리기도 했다.
그런 한 이사장이 지난달 2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2003학년도 한국학 대학원 학위수여식에서 주는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몇 안 되는 메세나 기업인으로서 전통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이를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서울 평창동 삼공화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자수성가한 대부분의 건실한 중소 기업인들이 그러하듯 근면과 검약이 말투와 옷차림에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취향도 천차만별인 고미술품 컬렉션을 하면서 속기도 많이 속았다”는 그는 “그래도 뭘 하나 남겨 보겠다고 애쓴 평생이 헛되지는 않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1927년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나 1945년 광복과 함께 혈혈단신 귀국한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서울 종로 3가 화공약품 원료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오늘의 기업을 일궜다. 모두 4층 건물인 삼공화학 건물의 2개 층은 자신이 따로 설립한 한빛문화재단 소장품의 수장고였다.
그의 꿈은 제대로 된 개인 박물관을 짓는 것.
“99년 내 아호를 따 이태원에 화정(和庭)박물관을 짓긴 했는데 단독주택을 개조한 것이라 상설전시를 하기 어려워요. 오래 전 사무실 뒷산 8000여 평을 박물관 자리로 사 두었지만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정서를 냈는데도 허가를 못 받고 있어요.”
그는 우리나라가 문화재를 모으고 기부하는 일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관련법의 배려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고려 범종(梵鐘)을 대영박물관에 아예 기부하고 싶은데 불법이에요. 이제 우리 문화재를 세계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열린 시각이 필요합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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