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그 명성에 비해 한국에는 덜 알려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해마다 100여개국, 1만여곳 이상의 출판사가 참가하는 일종의 ‘문화 올림픽’이죠. 국제적으로 저작권 계약이 가장 많이 이뤄지며, 단기간에 세계적인 문화인이나 지식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취재진이 1만2000여명이나 몰려오는데 이건 월드컵의 두 배 규모입니다.”
―도서전의 ‘주빈국’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 해 도서전에서 온갖 조명을 다 받는다고 할 수 있죠. 일단 주빈국에는 2000평의 전용공간이 배정됩니다. 한국의 책뿐 아니라 공연 음악 미술 등 문화 전반을 일거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주변 도시에서 벌어지는 한국의 공연만 800회 이상 될 겁니다.”
―경제적인 부수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요.
“보통 큰 게 아닙니다. 책에 관심 있는 관광객이 30만명 넘게 몰려오는 이 도서전에서 ‘주빈’이 된다는 건 우리의 이미지를 올리는 엔진 역할을 할 겁니다.”
―어떤 일들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한국의 대표 책 100권을 뽑고, 문학 대표작들도 뽑아서 영어 중국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 옛날의 인쇄문화부터 세계 최첨단인 멀티미디어까지 모두 보여줄 겁니다. 무대예술 공연 학술 전시까지 망라해 한국을 위한 종합 문화축제가 되도록 해보이겠습니다.”
―서울대 음대 교수, KBS 교향악단 총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에 작가 경력까지 갖추셨으니 적임이신 것 같습니다.
“아, 그건 정말 아닙니다. 2002년 총장에서 물러난 후 작가로서 승부를 걸어보자고 모질게 마음먹었어요. 하루 10시간씩 소설을 쓰며 모처럼 행복감을 맛봤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문화관광부로부터 불쑥 조직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와 솔직히 달아나고 싶었죠.”
―음악인으로서 많은 성취를 하셨는데도 문학이 그렇게 좋습니까.
“여태까지 뭐하다 이제야 시작했나 싶을 정돕니다. 하지만 음악은 제 출발지점으로 여전히 저의 사랑이 머물고 있는 곳입니다.”
―첫 장편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 출간에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죽다가 살아난 느낌입니다. 시골서 자란 아이가 스승들을 거쳐 가며 마침내 국제 콩쿠르 정상에 서는 이야기지요. 평소 ‘어떻게 음악을 해야 한다’고 설명은 해왔지만 막상 글로 보여주려니 뚫고 가야 할 관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이 위원장은 ‘주빈국 조직위원장’으로서 겪는 매일의 일들이 언젠가 작품의 ‘거름’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