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정신대시민모임 박은희씨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 펴내

  • 입력 2004년 3월 1일 19시 23분


일본군 위안부 출신 훈 할머니의 일생을 책으로 펴낸 대구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박은희 사무국장.  -대구=이권효기자
일본군 위안부 출신 훈 할머니의 일생을 책으로 펴낸 대구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박은희 사무국장. -대구=이권효기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자꾸 세상을 뜹니다.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할머니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알려졌으면 합니다.”

2001년 2월 중순 캄보디아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한 일본군위안부 출신 훈 (한국명 이남이·李南伊·당시 77세) 할머니의 일생이 1일 책으로 정리돼 소개됐다.

책을 만든 대구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박은희(朴銀姬·32) 사무국장은 “등록된 군위안부 할머니가 당초 209명에서 130명으로 줄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이라는 제목의 이 책(176쪽)은 훈 할머니의 출생과 군위안부 시절, 캄보디아 정착 과정 등을 꼼꼼하게 담고 있다.

박씨는 회원들과 함께 지난 5개월 동안 훈 할머니의 국내 연고지인 경북 경산을 수차례 오가며 할머니의 흔적을 더듬었다.

1997년 의사 변호사 학생 등이 모여 만든 시민모임은 그동안 할머니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건강을 돌보는 일을 활발히 펼쳐 왔다.

경북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박씨는 2000년 논문 준비를 하기 위해 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을 계기로 이 모임에 참여했다.

“얼마 전 한 여배우가 군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누드사진을 찍었다가 물의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배우를 탓했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 하는 쪽은 정부입니다. 할머니들이 13년 동안 수요집회를 열고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이를 외면했어요. 이런 풍토에서 이번 누드사진 같은 일도 생겼을 것입니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17세 때 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훈 할머니는 1943년 캄보디아에 정착한 뒤 어렵게 살다가 98년 귀국해 잠시 머물다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2001년 2월 15일 아침 훈 할머니는 수도 프놈펜 부근 수쿤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박씨는 “어느새 훈 할머니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며 “돌아가신 할머니들이 남긴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한분 한분의 삶을 정리해 책으로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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