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누드’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문화현상은 역사인식의 혼란이다. 누드 제작자들이 일본군위안부가 뭔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파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 대한 무지와 역사교육을 개탄하는 사람도 있지만 역사에 대한 판단이 흔들리는 게 더 큰 이유다. 중국의 주자(朱子)는 젊은이들이 역사를 배우는 것에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그는 학문의 기본인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 사서(四書)를 읽고 난 다음 역사서를 읽도록 했다. 그는 “만약 곧바로 역사서를 본다면 마음속에 일정한 기준이 없어 대부분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역설했다.
▷일제 침략사를 궤변과 억지논리로 정당화하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안중근 의사는 개인적 불만을 이토 히로부미 탓으로 돌려 분풀이했다’거나 ‘3·1운동을 일본이 평화적으로 진압했다’고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펴고 있다. 아예 상대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지만 최근 우리 주변에서 역사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을 보면 가만히 있기도 어렵다.
▷교실에서 검증되지 않고 편향된 역사교육이 이뤄지는가 하면 정치적 목적으로 역사가 왜곡되기도 한다. 같은 역사적 사건을 놓고 시각차가 너무나 크고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되어 있으니 제3자로서는 판단이 흐려지는 게 당연하다. ‘친일 사이트’ 같은 독버섯이 자랄 수 있는 유해환경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역사를 많이 가르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엉터리 역사’가 판을 칠 수 없도록 역사를 바르고 정확하게 바라볼 줄 아는 지식을 갖추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주자의 말처럼 역사가 길을 잃어버리게 되면 민족과 국가도 같이 길을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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