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게는 피안의 세계로 여겨지는 현대물리학에 근접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마 과학자의 전기일 것이다. 이 책은 입자물리학의 기초가 된 쿼크(quark)이론으로 196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머리 겔만(75)의 전기·과학자의 생애를 전해주는 동시에 독자들을 현대물리학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한 편의 전기를 쓰기 위해 수년간 준비작업을 거쳤을 뿐 아니라, 겔만이 사는 근처로 집까지 옮겼던 저자의 열성 덕분에 독자들은 가장 뛰어난 현대물리학자 중의 한 사람인 겔만의 다양한 면모를 접할 수 있다. 겔만은 14세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15세에 이미 예일대에 입학한 뒤 28세에 ‘기묘한 입자(strange particles)’에 관한 이론으로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 과학을 선도하는 아홉 등불’ 중의 한 사람으로 뽑혔을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한 물리학자다. 또한 35세에는 혼돈스럽던 소립자세계에 질서를 부여해 준 쿼크 및 팔중도(八重道·Eightfold Way) 이론을 완성했다.
그는 초인적 기억력으로 고대 역사부터 프랑스와 중국 요리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고,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할 때는 며칠 만에 익힌 스웨덴어로 연설했을 정도로 뛰어난 언어감각을 가졌다. 그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쿼크’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덕분에 그는 소립자 구성 성분을 같은 시기에 발견했던 츠바이크를 제치고 소립자이론의 단독 창시자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천재성의 한편에 무엇을 전공할지 몰라 허둥댔고, 졸업논문의 기일 엄수도 힘들어 한 결점투성이 물리학자의 모습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아버지에게 진로를 물어야 했고, 예일대를 졸업할 때가 되어서는 졸업논문을 기일에 맞추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언어감각이 뛰어났지만 평생 글쓰기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려 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는 노벨상 수상 직후 발행되는 기념 논문집에 실을 공식적인 강연록을 작성하지 못하는 사고까지 내고 말았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자신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편 독자들은 과학자로서 그의 생활이 펼쳐지던 무대를 통해 20세기 현대물리학을 조망할 수 있다. 저자는 겔만과 동시대에 활동하던 다른 과학자들이 마주하고 있던 물리학의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내 설명하는 한편, 이들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 어떤 논쟁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생소하게만 생각되던 입자물리학의 세계에 한발 가까워지게 된다.
이런 과학이론에 대한 설명은 이론작업을 하던 연구실의 정경, 이들 사이에 일상으로 오가던 대화들 사이사이에 위치해 읽는 이에게 부담을 덜어준다. 정갈한 번역에다 적절한 곳에 들어가 있는 옮긴이의 해설과 주석도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입자물리학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박진희 동국대 강사·과학기술사 jiniii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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