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면 볼 수 있는 학교도서관의 풍경 하나. 학생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손에 쥐고 있는 책들의 반은 만화책인 경우가 많다. 학교도서관에 들여놓을 만한 좋은 만화책으로 ‘오디션’과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짱뚱이의 나의 살던 고향은’과 ‘반쪽이의 육아일기’ 등이 있다. 실제 도서관에 들여놓았더니 아이들도 많이 찾고 있다.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만화방 풍경에는 우려의 눈길이 앞선다.
물론 빌려가는 책과 점심시간에 잠깐 도서관에 와서 보는 책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서관을 운영하는 교사로서는 만화 읽기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만화책만 읽다 보면 글자로 가득 찬 책들은 어렵다고 못 읽게 되는 것이 아닌지, 학교도서관에 대한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학교도서관’이라는 필터로 거른 만화책에 대해서 문턱을 더 낮추고 열어달라고 요구하지만, 목에 술술 넘어가는 유동식만 먹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천천히 곱씹으며 담백한 맛을 음미하는 독서도 필요하니 만화를 벗어나서 폭넓게 책을 읽으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에 도서관 구입 목록에 흔쾌하게 추가한 만화책이 있다. 인터넷 매체에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은 이 책 ‘십자군 이야기 1’은 전체 6권 완간을 목표로 나온 첫 번째 권이다. 11세기 서유럽이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앞세워 동로마제국과 이슬람 세계를 공격하면서 일어난 십자군전쟁을 다룬 지식만화책이다. 이 책의 미덕은 단순히 역사를 만화로 옮겼다는 점을 뛰어넘어 저자의 올곧은 시선으로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관점에서 담았다는 점에 있다. 나에겐 십자군전쟁이라는 역사의 발견이자 시대의식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 즐거운 책읽기였다. 이 책은 십자가의 이름 아래 행해진 침략전쟁이 오늘날 이슬람을 둘러싼 강대국의 행보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또한 주제에 대해 성실하게 공부하고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부록에서는 이 책을 쓰도록 관점을 잡아준 책을 사려 깊게 소개하고 있다. 만화책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서 온 편지’, ‘말해요 찬드라’ 등을 다루는 솜씨는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문제로 녹여내는 문제의식을 만화적인 상상력과 웃음에 실어서 독자를 또 다른 책읽기로 이끌고 있다. 만화를 소통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생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다.
이 책을 도서관에 들여놓고 아이들이 즐겨 읽는 만화책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편과 비교하며 읽어보라고 해도 좋겠다. 두 권의 만화책 속에 담긴 유럽과 이슬람은 서로 많이 다른 모습이다. 역사교과의 부교재로, 세상 보기를 알려주는 책으로 묶어서 권하고 싶다. 이 책 외에도 세상 보기를 알려주는 만화책으로 ‘십시일反’(창비)과 ‘목 긴 사나이’(글논그림밭), ‘박시백의 그림세상’(해오름)이 있다. 학교도서관에서 만화책만 읽는다는 걱정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멋진 책들이다.서미선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 모임 회원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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