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유명희(柳明姬·50)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흔히 잘나가는 과학자들은 박사학위 논문이나 박사후 과정 논문이 주목을 받으면서 ‘뜨는’ 게 보통이지만, 유 박사는 불혹의 나이가 가까워지면서 발표한 논문들을 통해 국제적인 분자생물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 전 세계 생명과학자들은 인간게놈 프로젝트 이후의 새로운 표적을 단백질로 삼고 있다. 대부분의 질병이 단백질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 박사는 그중에서도 ‘단백질 접힘’ 분야에 대한 연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5년 단백질 접힘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질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밝힌 실험 논문을 ‘네이처 구조생물학’에 발표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유 박사가 1998년 ‘여성과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의 첫 회 수상자로 결정된 것도 이 연구의 중요성 덕분. 이 상은 국제심사위원단에 의해 연구업적을 인정받은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유럽, 라틴아메리카, 북아메리카의 5대 대륙 여성과학자에게 주어진다. 수상자들은 각각 10만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단백질 접힘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렇다. 단백질의 기능은 그 구조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데, 단백질 구조는 긴 사슬처럼 연결된 아미노산이 용수철 모양으로 말리거나 접히면서 공 모양의 입체구조가 돼야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한다. 단백질이 사람의 몸속에서 자신만의 입체구조를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단백질 접힘인 것. 유 박사에게 로레알-유네스코상은 ‘작은 좌절’과 함께 기억된다. 상을 받기 직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것. “‘여기서 아직 할 일이 있어서겠지’라고 여유 있게 생각하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수상 소식이 들려 왔어요.”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데는 다양한 책 읽기가 큰 도움이 됐다.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도 생물이 아닌 국어였다고. “인생의 성패는 독서량에 달려 있다는 모교 정희경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정말 동감해요. 역사적 교훈을 얻는 곳도 책이요, 경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판단해 볼 수 있는 곳도 책 아니겠어요.” 그는 책 이야기가 나오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비롯해 이문열의 소설들, ‘람세스’ ‘로마인 이야기’ ‘마녀가 더 섹시하다’ 등의 내용을 줄줄 풀어 놓는다. 하지만 요즘은 하도 바빠 주로 외국 출장 때 비행기에서 독서를 즐긴다고 한다. 6남매 중 다섯째. “부모님의 관심 영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그게 참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은 다 해 볼 수 있었던 셈이니까요.”
로레알-유네스코 세계 여성과학자 상
그래서일까, 유 박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요즘도 운전을 하거나 산에 오를 때 늘 새로운 길에 도전해 본다. 이런 유 박사의 성격은 연구가 난관에 부닥쳤을 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새로운 방법에 도전해 볼 수 있기 때문.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특성을 분석하고 싶은 단백질이 너무 쉽게 분해돼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어요. 분해되지 않도록 20가지가 넘는 물질을 썼지만 잘 안 됐어요. 그때 ‘아예 발상을 달리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분해를 저해하는 물질을 쓸 것이 아니라 분해가 되지 않는 낮은 온도에서 실험을 해 보자는 것이었죠.” 섭씨 4도 이하로 유지되는 ‘콜드 룸’에서 가운 속에 스웨터를 껴입은 채 오전 5시까지 실험하고 다시 9시에 출근하기를 밥 먹듯이 한 끝에 결국 자신의 방법으로 실험에 성공했다. 이런 그에게 정말 힘들었던 기억은 연구과정보다 아이들과 관련된 것이 많다. “연구는 최선을 다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왔는데, 아이들 문제는 언제나 예측불허로 다가오니 힘들 수밖에요.” 두 아들은 한창 자랄 때 팔다리가 부러져 오는 것은 기본이었고, 외과 병동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한번은 미국에 출장 가 있을 때였다. 큰아들이 팔이 부러져 입원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작은아들이 폐렴에 걸렸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미국에서 그런 전화를 받는 제 심정이 어떻겠어요.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뿐이었죠.” 그런 아이들이 이제는 대화가 되는 친구들로 자란 게 대견스럽기만 하다. 유 박사에게 단백질은 평생의 친구다. 그것도 늘 놀라움과 겸손함을 가르쳐 주는 친구다. “모든 단백질은 자신만의 3차원 구조와 기능을 갖고 있어요. 한 단백질을 분석하는 데에 쓰인 방법이 다른 단백질에는 적용이 안 돼요.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 단백질인 셈이죠. 단백질에 대해 뭔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됐다고 확신하는 순간 또 다른 단백질이 내 앞에 나타나요. 마치 내가 아는 것은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 한줌에 불과하다는 듯이….” 요즘 그는 하루를 25시간으로 만들어 지내고 있다. 하지만 힘든 줄을 모른다. 21세기 프런티어 사업단인 프로테오믹스이용기술개발사업단이 발족 1년반이 지나면서 서서히 발동이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백질을 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연구에 가속도가 붙고 있어요. 한국인에게 자주 발생하는 질병인 골다공증, 당뇨, 동맥경화, 치매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발굴해 내고 이것이 신약 개발로 이어지도록 원인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 낼 겁니다.” 장경애동아사이언스기자 kajang@donga.com
▼나를 있게한 남성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여성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유명희 박사도 주변 남성들의 배려와 격려에 힘입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 그리고 연구 과정에서 그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힘을 줘 온 그 남성들에 대한 추억. ▽아버지=“너는 시집도 가지 말고 유학 가서 공부해라.” 똑똑하던 언니들이 모두 대학 졸업 후 시집을 가버리자 서운함을 표현하던 아버지의 말씀. 어린 유명희의 가슴에 작은 이정표가 됐다. ▽남편=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시절, 김에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는 남편의 모습을 본 선배가 놀라워하자 “내가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어요”라며 웃던 사람. 그는 지금도 유 박사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두 아들=“엄마가 생물학을 한다고 해서 저한테도 생물학을 강요하지 마세요.” 지금 대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인 두 아들은 엄마의 인생과 자신들의 인생이 별개라고 생각한다. 집안을 늘 전쟁터 분위기로 만들던 아들들이지만 이젠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 신기하다. ▽지도교수와 동료들=미국 MIT의 박사후 과정 지도교수 조너선 킹. 그는 유 박사의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유 박사에게 킹 교수는 항상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과학이란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줬다. 또 한사람, 서른 살에 MIT 교수가 되면서 단백질 접힘 분야에서 화려한 연구업적을 낸 피터 김 박사. 유 박사는 자신보다 네 살 아래인 김 박사의 당시 MIT 연구실에서 학생들이 김 박사의 생각과 말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1년간 김 박사의 연구실에서 ‘연구실 경영’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유명희 박사는 △1954년 서울 출생 △1976년 서울대 미생물학과 졸 △1981년 미국 버클리대 미생물학 박사 △1981∼85년 미국 MIT 대학원 박사후 과정 연구원 △1985∼2000년 생명공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2000년∼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2000∼200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단백질긴장상태연구단장 △2002년∼현재 21세기 프런티어 사업단 프로테오믹스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 △1996년 제1회 생명공학원상 수상, 제3회 목암생명과학상 본상 수상 △1998년 제1회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 수상 △2001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2년 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2003년 ‘2003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