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22일, 영국 코벤트 가든 오페라극장에서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를 관람한 뒤 선데이타임스지의 음악평론가 휴 캐닝은 이렇게 외쳤다. 그가 말한 ‘진짜’란 호프만 역으로 출연한 멕시코의 테너 롤란도 빌라손(32)을 두고 한 말이었다.
캐닝은 성악 분야에서 ‘황금귀’로 일컬어지는 권위 있는 음악평론가. 그는 “내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갈채를 신인 테너에게 보내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빌라손은 잠재력과 놀랄 만한 개성을 갖춘 진짜다”라고 격찬했다.
도대체 빌라손은 어떤 테너인가. 그는 1972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 주로 멕시코 국내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98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신예 성악가 양성 프로그램에 등록한 그는 99년 도밍고 콩쿠르에서 2등상을 타면서 날개를 달기 시작했고, 지난해 10월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을 맡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주역 테너가 됐다. 최근 버진 레이블로 발매된 그의 첫 독집 음반 ‘롤란도 빌라손-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집’에서 그의 진면목과 만날 수 있다.
사실 70년대 ‘테너 3국지’를 정립시킨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의 그림자는 넓고 깊다. 로베르토 알라냐, 호세 쿠라, 살바토레 리치트라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세대 테너계의 왕좌를 노리고 있지만, 70년대 ‘빅3’의 탄탄한 노래에 길든 음악 팬들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알라냐는 호방함이, 쿠라는 섬세함이 부족한 것만 같고, 리치트라도 왠지 귀에 꽉 차지 않는 것.
빌라손의 독집은 그런 배고픔을 채워준다. 첫 곡인 칠레아 ‘아를의 여인’ 중 ‘페데리코의 탄식’에서부터 이지적이면서 또렷한 음성이 귀를 꽉 채운다. 처음에는 카레라스의 목소리를 연상했다. 그러나 도니제티 ‘남몰래 흐르는 눈물’ 중 ‘나를 사랑하는 거야!(M’ama)’라고 외치는 힘 있는 고음 대목에서 그의 타오르는 듯한 음성은 도밍고를 닮아 있었다.
인기 있는 선배들을 닮았다고 해서 빌라손의 노래를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베르디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은 쉬운 멜로디지만 위대한 테너들도 쉽게 부르기 힘든 노래. 도밍고도 이 곡을 부를 때면 되바라지는 듯한 목소리가 드러난다. 빌라손은 간단히 이 함정을 벗어난다. 호흡의 완급과 공명의 조절로 방심한 듯한 한량 분위기를 설득력 있게 펼쳐낸다.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아리아에서 그의 표정은 180도 변신한다. 진지한 사랑의 행복에 취한 젊은이의 감상이 한결 깊은 목의 공명으로 살아난다.
얕음과 깊음을 모두 갖춘 음색, 강인하게 뻗는 고음, 이지적인 해석…. 알라냐와 쿠라, 리치트라는 어쩌면 빌라손의 등장을 예비하기 위한 서곡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너무 흥분하는 걸까? 그래도 별 다섯 개 만점의 평점 코너라면, 다섯 개를 넘어 별 하나를 더 얹어주고 싶기도 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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