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큐멘터리의 ‘대부’로 불리는 김동원 감독(49)은 ‘송환’(送還)의 도입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과 북송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92년 3월7일 김 감독은 한 요양원에서 출소된 뒤 갈 곳이 없던 장기수 조창손 김석형씨를 만난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을 중심으로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2000년 9월 북으로 송환될 때까지의 사연과 삶을 담았다. 총 500개가 넘는 테이프에 800시간 넘는 분량이 촬영됐고 개봉까지 12년이 걸렸다. 작품 속에서 장기수는 ‘고집 센 노인들’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김 감독도 이에 뒤지지 않는 ‘고집 센 감독’이다.
1983년 ‘바보 선언’ ‘서울 예수’ ‘태’ 등 극영화 연출부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던 김 감독은 아르바이트로 서울 상계동 빈민촌 철거 현장을 촬영하다 그 충격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 그가 상계동 주민들과 함께 한 3년의 기록은 88년 ‘상계동 올림픽’으로 발표됐고,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6일간의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다룬 ‘명성, 그 6일의 기록’은 89년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됐다.
홍기선 감독의 ‘선택’이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기수로 기록된 김선명씨를 중심으로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극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반면 김 감독의 ‘송환’은 다큐멘터리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다. “내 마음에 니 얼굴이 보였어” “그래 (집) 나가지 말랬지”, ‘늙은’ 아들을 만난 백발 노모의 말은 그 어떤 주장보다도 강렬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는 이념보다 인간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감독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간첩’을 처음 만났을 때의 낯설음, 오로지 변함없이 한쪽만 비판하는 장기수들의 주장들을 접했을 때의 당혹스러움, 인간적인 연민과 아쉬움 등 김 감독의 느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선생들의 삶이 해피 엔딩으로 멈춘 것은 아닐 것이다. … 어쩌면 남한에서보다 더 힘들게 그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긴장감을 주는 투쟁의 대상이 눈에 없고, 이제 스스로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마침표’를 찍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오랜 작업 끝에 내린 김 감독의 에필로그다.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 수상작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이 이 작품의 프린트 비용 일부를 부담한다. 19일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 등 전국 7개관에서 개봉될 예정. 관람 등급은 미정.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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