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기자의 감성크로키]“오! 귀여운 그대”

  • 입력 2004년 3월 11일 16시 51분


나는 평범한 여행 애호가예요. 외국을 호화롭게 다니는 여행이라고 짐작하지는 말아요. 나의 여행은 그저 햇빛을 가리는 모자를 쓰고 가볍게 도시를 산책하는, 지극히 사소한 일이랍니다. 여행의 커다란 즐거움은 귀여운 남자와 귀여운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

귀여운, 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고요. 그렇다면 죄송해요. 얕보는 의도는 전혀 없어요.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짧은 소설 ‘귀여운 여인’을 떠올려 보세요. 작은 일에 감탄하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까르르 웃음이 아름다운 그녀. 독자들도 귀여운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죠.

어제는 서울 청담동의 한 라면 가게에 갔더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라면을 젓가락으로 휘감아 먹고 있었어요. 만화 ‘캔디 캔디’에 나오는 일라이저 곱슬머리 같은 면발이 어찌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던지요.

그는 금박 장식의 여성용 가죽 헤어밴드로 앞머리를 시원하게 넘기고 있었는데, ‘메트로 섹슈얼’이라는 요즘 유행어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귀여웠어요. 아, 여자 같은 남자가 귀엽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이즘(∼ism)’이라는 사회의 고정 내러티브에 갇혀 있지 않는 자유가 좋아 보였을 뿐입니다.

요즘 여러 패션 행사장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어느 귀여운 여자는 늘 초미니 스커트를 입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인사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짧은 치마는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겨요. 프랑스 파리에서 스타일링을 공부했다는 그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주변의 평을 듣더군요. 이미지는 자연적이라기보다는 인공적인 것 같습니다.

텍스트 비평가 존 버거는 ‘본다는 것의 의미(About Looking)’란 책에서 물었어요. 카메라 발명 이전에는 무엇이 사진의 역할을 담당했을까. 그는 ‘기억’이라고 스스로 답합니다.

얼마 전 서점에서 찜해 놓은 ‘스토리 오브 블로그’라는 제목의 창의성 넘치는 공책을 살까 궁리 중입니다. 사진 수납과 메모를 겸할 수 있죠. 이젠 온라인의 블로그가 오프라인으로 거꾸로 헤엄쳐 나오고 있어요.

그래요. 나의 평범한 여행에서 마주치는 귀여운 남자와 귀여운 여자를 잘 기억해야겠어요. 그들은 감성지수를 높여 줍니다. 하바나 스쿠터를 탄 남자, 빨간색 비옷을 입은 여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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