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의 ‘살인기계’로 훈련된 애론(베네치오 델 토로)은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 영웅이 되어 귀국하지만, 자신의 무자비한 살인 행각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다. 몇 년 뒤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그는 숲 속에서만난 밀렵꾼들을 자신을 죽이려고 온 암살자로 착각해 잔인하게 살해한다. FBI가 투입되지만 신출귀몰한 애론을 잡지 못하고, 결국 그를 살인병기로 키웠던 전 훈련 교관 엘티(토미 리 존스)가 투입된다. 둘은 직접 칼을 만들고, 인디언처럼 발자국의 냄새를 쫓아가고, 도심 한가운데서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보호색으로 위장한다. 엘티와 애론의 쫓고 쫓기는 생존게임이 시작된다.
이 영화는 고독과 살기가 뒤섞인 욕구불만의 표정을 가진 베네치오 델 토로와 ‘도망자2’ 시절부터 ‘추적 전문’으로 자리 잡은 성격파 배우 토미 리 존스를 기용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성경 구절을 도입부에 인용해 ‘킬링 머신’이 훈련교관에게 느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등 심오한 존재론적 고민을 숨겨놓은 ‘척’한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영화는 액션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영화가 승부를 거는 대목은 두 남자가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는 초반 15분과 후반 15분이다. 에피소드는 단선적이고, 캐릭터의 폭발성은 빈약하며, 배우들의 표정은 피곤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프렌치 커넥션’과 ‘엑소시스트’를 연출한 윌리엄 프레드킨이 만든 이 영화는 참전용사의 피해망상을 다룬 ‘람보’와 현대사회 속에서 길 잃은 순수성을 그린 ‘부시맨’을 이종 교배해 놓은 것 같다. 색다른 액션 시퀀스를 보여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듯 액션은 신석기와 철기시대의 동물적인 원시성으로 다시 돌아갔다.
난센스는 여기서 발생한다. 두 남자는 이 영화가 목숨을 건 ‘선사(先史)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한나절 동안 돌을 깎거나 철을 녹여 칼을 만들지만, 요즘 시대에 단돈 10달러면 살 수 있는 칼을 도시 인근 숲에서 열심히 만든다는 설정 자체가 실소를 자아낸다. 헉헉대며 긴 추적 신을 소화해 내는 58세의 토미 리 존스도 힘겨워 보인다.
‘헌티드’에서 한 가지 돋보이는 점은 청각이 야기하는 공포감. 숲 속에 은신한 애론이 밀렵꾼들의 숨통을 조이는 영화 초반부, 앞뒤 좌우 극장 스피커에서 출몰하는 애론의 산짐승 같은 목소리를 듣는 것은 ‘5.1채널 홈시어터’ 시대를 사는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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