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 30대 주부가 있는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주부 200여만명이 매일 밤 미니홈페이지 또는 온라인 일기장인 ‘블로그(Blog)’에 열중하고 있다.
일부는 하루라도 블로그를 보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블로그홀릭’ 증세마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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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은 블로그에서 마음에 맞는 블로거(Blogger)들을 친구, 이웃, 친척 등으로 등록하고 이들의 블로그에 연속해 옮겨가는 ‘파도타기’를 통해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한다.
○ 종이인형, 아바타… 그리고 블로그
전문가들은 싸이월드와 네이버, 세이클럽, 엠파스 등에 있는 블로그를 합치면 국내에서 개설된 블로그가 2000만개에 육박한다고 전한다. 이 중 활성화된 블로그만 수백만개, 주부 블로그는 200만개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싸이월드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노무현 대통령의 며느리, 박근혜 의원이 블로그를 통해 사생활을 일부 공개했던 사이트이다.
블로그는 웹(Web)과 인터넷 일지(Log)의 합성어. 한국의 ‘블로그 세계’에는 여성, 그중에서 주부 파워가 세다는 점에서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국의 블로그에는 공적 메시지를 담은 ‘1인 미디어’가 많다면 한국에서는 사생활을 살짝 보여주는 ‘공개 일기장’이 많다. 특히 여성 블로거가 자신의 방을 꾸미는 데 매달리는 것은 아바타의 치장에 신경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인터넷 이용 현황 조사기관 코리안클릭의 유도현 이사)
지금 주부들이 어릴 적 종이인형에 옷 입히기를 즐겼듯 아바타에 매달리다가 요즘에 블로그에 빠진다는 설명이다. 블로그에는 또 1990년대 여고생 사이에서 유행했던 ‘교환일기’의 성격이 배어 있다. 여기에다 어려운 웹문서를 이해하지 않아도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등이 겹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 온라인 인연 오프라인까지
주부만을 위한 ‘우먼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아줌마닷컴의 황상윤 팀장은 “주부들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생산적인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소개했다.
“주부들은 자신의 내면이나 주위로부터 자기를 인정받으려는 욕구, 소속감의 욕구를 갖고 있는데 이를 블로그가 충족시켜 준다.”(서울대 의대 정신과 유인균 교수)
주부 박선영씨(31·경기 평택시 칠원동)는 ‘우먼블로그’에 개설한 자신의 블로그에 에로유머를 올릴 때마다 보통 30∼40건, 많게는 400여건의 꼬리를 달게 하는 인기 블로거. 그러나 박씨는 지난해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한 주부의 블로그 ‘아름다운 삶’을 대신 운영하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온라인에서 만난 언니가 갑자기 숨져 다른 주부인 ‘세번다님’과 함께 언니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어요. 블로그를 통해 만난 관계라고 피상적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그는 매달 한 번 다른 주부 블로거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 온라인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싸이월드의 블로거 홍세미씨는 “미국에 간 친구와도 블로그를 통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아마 블로그가 없었다면 시나브로 멀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특히 주부들이 많이 이용하는 사이트의 블로그는 서로를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다른 사이트와 달리 무례한 네티즌으로부터 황당한 경험을 당하는 경우가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 그러나 ‘장밋빛 세계’만은…
그렇다고 블로그 세계가 ‘장밋빛 세계’만은 아니다.
“블로그는 인터넷 커뮤니티보다 더 개인적이고 찰나적이므로 은밀함이 강화되고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본질적으로 은밀함이 낳는 위험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경성대 디지털콘텐츠학부 권만우 교수)
또 블로그 운영 사이트가 갑자기 문을 닫으면 공들여 모아놓았던 기록이 일시에 사라질 수도 있다.
“오프라인에서 상처받은 자기애나 충족하지 못하는 소속감을 온라인에서만 풀려고 하면 결국 실제생활이 갈수록 어려워질 수 있다. 발을 딛고 있는 곳은 결국 오프라인이지 매트릭스의 세계가 아니다.”(유인균 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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