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일종의 기어 변속일 뿐이며, 혁명은 일종의 과속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속’으로서의 전쟁은 다른 운송 장치를 통해 최대 속도로 진행되는 치안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역저인 ‘천개의 고원’을 통해 한국에 알려진 프랑스 사상가 폴 비릴리오(72). 그는 질주하며 달려온 인간의 역사가 지금까지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주며 ‘속도’를 둘러싼 갖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비릴리오가 스스로 자기 작업을 규정한 개념인 ‘질주학(dromologie)’은 역사를 결투, 투쟁, 전쟁의 연속으로 바라보는 그의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관을 표현한다.
‘속도와 정치’는 책이 처음 출간된 1977년 당시 비릴리오의 생각을 담고 있지만 그가 왜 1990년대부터 원격조종 기술이나 인공지능,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의 사용에 따른 사회적 정치적 반향에 관심을 확장해 왔는지 그 실마리를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공간을 축소하고 시간을 압축하며 더욱 가속도를 높이면서 질주하는 세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그의 관심사인 것이다.
잠언처럼 이어지는 비릴리오 특유의 문체를 전해주려는 꼼꼼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 인물 소개 등 옮긴이의 성실함이 돋보인다.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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