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조…’ ‘무릎꿇은 조선’ 뼈아픈 역사 생생히

  • 입력 2004년 3월 12일 21시 14분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산성일기/작자 미상 김광순 옮김/136쪽 6700원 서해문집

“백 보 걸어 들어가셔서 삼공육경(三公六卿)과 함께 뜰 안의 진흙 위에서 배례하시려 할 때였다. 신하들이 돗자리를 깔기를 청하는데 임금께서 ‘황제 앞에서 어찌 감히 스스로를 높이리오’하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시자, 저들이 인도하여 단에 오르셔서 서향(西向)하여 제왕 오른쪽에 앉으시게 하였다.”

‘산성일기’는 병자호란 때인 1636년 12월 14일 인조와 신료들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던 날부터 1637년 1월 30일 왕이 세자와 함께 청 태종에게 나아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을 한 뒤 저녁에 서울 궁궐로 돌아오기까지 총 48일간의 기록이다. 중심부의 내용은 48일간을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1589년 9월 청 태조 누르하치가 명나라로부터 ‘용호장군’의 이름을 얻었을 때부터 1639년 12월 삼전도에 승전비를 세울 때까지 50년에 걸친 긴 세월의 이야기다. 병자호란 당시 참담했던 우리 역사를 적나라하게 바라보며 반성하도록 하는 생생한 기록이다.

고전을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매끄러운 현대어로 옮겼고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상세한 추가 설명과 용어해설, 연표 등도 곁들였다. ‘북학의’, ‘징비록’을 같은 방식으로 펴내는 등 이 시대에 맞는 고전 편집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오래된 책방’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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