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좌우갈등은 오래 된 것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특히 ‘신 좌우합작’이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우리 민족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지요. 더욱이 최근의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는 과거 해방정국에서 민족을 양분시켰던 좌우대립을 상기시킵니다.”
박 교수가 현재의 한국사회를 위기상황으로 진단하는 요인은 세 가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北美)갈등,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탄핵 정국’으로 표출된 정치적 갈등이다.
박 교수가 말하는 좌우합작이란 ‘정당성, 권력, 이익, 지혜의 공유를 통해 집단이나 정당을 뛰어넘어 사회, 민족, 국가 전체의 운명을 개척하고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 그런데 각 집단이 ‘공유’를 하지 않고 ‘독점’을 하려다 보니 합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박 교수의 지적이다.
사실 좌우합작이란, 자신들만의 역량이나 정당성만으로는 전체를 ‘독점’할 수 없다는 한계와 함께 위기의식을 인식할 때만 가능하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한국사회의 좌우세력에게는 이 같은 한계에 대한 인식이나 인정이 결핍돼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박 교수가 ‘합작’이란 개념을 제시한 배경에는 1980년대 말부터 약 15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민주화가 진척돼 왔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른바 ‘개발연대’라는 1960∼70년대의 기득권 세력을 소수화시킴으로써, 한편에서는 진정한 보수세력이 성장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세력이 미래지향적 태도로 타협 또는 협력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습니다.”
보수세력 내에서는 진정한 보수가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 속에서 합리적 자유주의자들이 성장했고, 진보세력 내에서도 세계화 자체를 부정하는 대신 대안적 세계화를 모색해온 민주적 평등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합작’의 방법으로 ‘현실에 대한 분석의 공유’를 제안한다.
“한국사회와 북한, 미국, 일본 등에 대한 ‘분석’은 함께 나누되, 이념적 지향성이나 가치판단에 따라 각자 ‘대안’을 제시하면 됩니다.”
좌우가 많은 부분에서 분석을 공유하다 보면 대안도 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기대. ‘분석의 공유’란 결국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에 따라 왜곡되는 분석을 ‘현실화’하자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경제적 자유’를 내세우며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평등주의자는 ‘평등’을 표방하며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발전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나 스스로도 내가 가진 가치관, 이념 등이 현실인식에 장애가 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며 “지식인이나 정책결정자들은 자기 이념이 현실 판단이나 정책결정을 오류로 끌고 가지 않도록 자아 반성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최근의 ‘탄핵 정국’에 대해서도 “정쟁(政爭) 차원에서 접근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지식인들은 좌우를 떠나 한국사회의 미래를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면서 현실적인 차선(次善) 또는 차악(次惡)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신자유주의 격랑속의 한국경제
‘新좌우합작’은 21세기 생존전략▼
‘신 좌우합작’의 핵심적 문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한국경제의 모델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있다. 이는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북한과의 관계 또한 설정해나가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무작정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환경보다 개발을 우선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경시할 뿐 아니라 국민국가 또는 민족국가의 현실을 무시한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가 그리는 한국사회의 지향점에는 ‘한민족 생활경제권’을 염두에 둔 이른바 ‘21세기 민족경제론’이 담겨 있다. 북한의 경제개발을 통해 7000만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독자적 내부시장을 안정적으로 갖추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부딪치는 한반도에서 안보차원의 완충지대와 경제차원의 관문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 전략이 30년 뒤 한국사회에 고통을 주었듯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역시 30년 뒤에 어떤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지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국내의 좌우세력은 현실분석을 공유하며 그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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