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 별명 김태련씨 43년만에 종로사무실 열어

  • 입력 2004년 3월 15일 18시 24분


15일 오전 종로4가 아시아극장 쪽 골목 안 허름한 4층 건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지 4층까지 오르는 데 4, 5차례는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근처에 집세도 싸고 엘리베이터를 갖춘 현대식 건물이 많은데 왜 굳이 계단을 걸어 올라야 하는 이곳을 고집하는지 주위에선 의아해 한다. 그러나 이 낡은 건물은 노인의 젊은 날 꿈과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 노인은 ‘낙화유수’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김태련씨(72). 유지광이 창설한 화랑동지회의 좌장으로 현존하는 최고 서열의 ‘주먹’이다.

정치깡패로 악명 높았던 동대문사단의 별동대 화랑동지회가 김씨의 손으로 43년 만에 부활한다. 이 낡은 건물은 옛 화랑동지회 사무실이 있던 곳. 김씨는 18일 사무실 개원을 목표로 후배들을 독려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미리 걱정하지 마. 예전의 그런 단체가 아니야. 그동안 주위로부터 받았던 도움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 사회에 되돌려주겠다는 순수한 뜻이야. 오갈 데 없는 불우한 건달들을 돕고 자칫 뒷골목 양아치의 길로 빠지기 쉬운 후배들을 선도할 거야.”

김씨는 이를 위해 마포구 상수동 자택을 비롯한 전 재산을 내놓았다. 그는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인텔리로, 아들은 미국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백신을 연구 중인 유명한 박사이며 두 사위는 의사와 무역업을 해 아쉬울 게 없다. 또 자식들에겐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겠다고 이미 공언했던 터.

“건달 세계와 관계없는 사회봉사 활동도 활발히 할 거야. 보육원을 하나 추천해 주면 아픈 몸을 이끌고라도 당장에 달려갈게. 그리고 내 마지막 꿈이 있다면 나와 옛 동지들이 함께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양로원을 짓는 거야.”

몇 년 전부터 심한 당뇨증세와 신장병으로 하루걸러 피를 투석하며 투병 중인 낙화유수. 그는 최근 자신의 후계자로 조병용씨를 내정한 뒤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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