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 러브(Tough Love·마약에 중독된 가족이나 친구에게 끊을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사랑)를 쉽게 ‘터프한 사랑’이라고 번역했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박혜원 프리랜서)
케이블TV의 인기 외화 번역을 도맡아하고 있는 김섭희 대표와 박혜원씨는 외화 번역은 곳곳에 도사린 함정 피해가기라고 말했다. 17년 번역 경력의 김 대표는 캐치온의 ‘섹스 앤 시티’ ‘웨스트윙’을, 4년 경력의 박씨는 동아TV의 시트콤 ‘프렌드’를 번역하고 있다.
‘섹스 앤 시티’는 생소한 명품 이름과 노골적인 성(性) 관련 이야기 때문에, ‘웨스트윙’은 NSC(국가안보회의) 등 다양한 기관 이름 때문에 번역에 어려움을 겪는다.
김 대표는 “미국 문화에 대해 잘 아는 한국인들이 많아 헤시브라운(감자 요리의 일종) 등 음식 이름이나 유명인사 이름은 그대로 써준다”며 “하지만 ‘섹스 앤 시티’에 나오는 섹스 관련 이야기들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은근슬쩍 넘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프렌드’는 빠른 전개 때문에 자막으로 쓸 수 있는 글자수가 제한돼 설명을 길게 할 수가 없다”며 “의역을 하다보면 결과적으로 오역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혀 모르는 고유 명사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해결하기도 하지만, 영어 슬랭(속어)에 맞는 우리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몇 시간동안 헤매기도 한다고 입을 모았다.
‘웨스트 윙’ ‘프렌드’ 등은 마니아층이 많이 있는 외화여서 번역으로 인해 재미가 줄어 들면 안된다는 부담도 적지 않다.
김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웨스트 윙’을 언급한데 대해서는 “안그래도 청와대에서 자주 본다며 번역에 신경을 좀 써달라는 이야기를 (케이블 TV사로부터) 들었다”며 “번역이야 항상 신경을 쓰지만 한국의 대통령이 정치 현실이 다른 미국의 드라마를 기자회견에서 거론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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