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함월사 우룡스님 “작은 나 살리자고 큰 나 죽여서야”

  • 입력 2004년 3월 18일 19시 22분


우룡 스님은 “불교의 수행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나’를 버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불교신문
우룡 스님은 “불교의 수행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나’를 버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불교신문
“큰스님은 서울에 많은데 뭣 하러 내려왔어요.”

16일 경북 경주시 함월사 조실(祖室)을 맡고 있는 우룡(雨龍·72) 스님을 찾았을 때, 그는 “할 이야기가 없으니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기자가 오랫동안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빙그레 웃더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진행된 4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세세한 사례를 들어가며 윤회와 업보의 무서움, 우리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도들에게 항상 자신을 뒤돌아보며 살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은 건너뜁니다. 자기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데 자꾸 자신과 무관한 남을 탓하지요.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고, 내 복(福)이며 내 업(業)’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말은 요즘 탄핵정국으로 소용돌이치는 사회에도 한 가닥 해법을 던지는 듯했다.

“사람들이 살벌해져 서로 복 털기 경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나와 내 집단의 이익만 챙기는 것은 반드시 상대의 원한을 사게 됩니다. 좀더 큰 테두리를 생각해야 하지요. 불교는 ‘나=세계’라고 가르칩니다. (볼을 탁탁 치며) 이 살덩어리를 죽이면서 가족이라는 나, 사회라는 나, 국가라는 나, 우주라는 나를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큰 ‘나’를 죽이면서 작은 ‘나’를 살리는 데만 골몰합니다.”

선교(禪敎)를 겸비한 선지식(善知識)으로 조계종단에서 인정받는 그는 최근 ‘불교의 수행법과 나의 체험’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염불 기도 주력(呪力) 간경 기도 참선 등 어떤 수행법을 선택해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며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한 가지 방법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밝혔다.

“큰스님들의 수행은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외국인 포교에 힘쓴 숭산 스님은 매일 1000배(拜) 원칙을 지켰어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도 절할 시간이 되면 통로에서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또 수행 중 겪었던 신기한 체험과 좌절을 이 책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오고 있는지 경내에 앉아 알아 맞추거나 가야산 봉우리를 한바퀴 도는데 15분밖에 안 걸리는 축지법을 체험한 일 등이 그것이다. 대개 큰스님들의 신통력에 관한 이야기는 많아도 이처럼 본인이 직접 활자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수행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식(識)이 맑아지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마치 득도한 것처럼 착각하는데 사실은 외도(外道)지요. 저도 그 단계에서 착각을 했습니다. 당시 금봉 스님이나 경봉 스님 등 노스님들에게 말씀드렸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지요. 이후 공부에 진전을 보지 못해 한동안 괴로워했습니다. 불자들이 제멋대로 공부하다가 외도로 빠지는 것을 주의하라는 뜻에서 이런 얘기를 썼습니다.”

1948년 고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그는 수덕사 직지사 쌍계사 통도사 선원에서 수행했으며 화엄사 법주사 범어사 강원에서 강사를 지냈다. 울산 학성선원에서 20여 년간 후학들을 지도했다.

인터뷰 도중 많은 이들이 들락날락했다. 그는 다녀가는 사람마다 “건강 꼭 조심하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경주=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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