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골 시간여행/배석규 지음/468쪽 3만원 굿모닝미디어
“별이 있는 하늘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여러 나라가 싸우고 있었다. 제자리에 들어가지 않고 서로 빼앗고 있었다. 흙이 있는 대지는 뒤집히고 있었다. 모든 나라가 싸우고 있었다. 제 담요에서 자지 않고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몽골인이 쓴 몽골의 정사(正史)인 ‘몽골비사(秘史)’는 칭기즈칸(1167?∼1227)이 태어나기 전인 11세기 어지러웠던 몽골 초원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YTN 워싱턴 지국장)는 이 ‘몽골비사’의 첫 장면이 펼쳐지는 동몽골 초원의 케룰렌 강에서 시작해 중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까지 2만여km를 자동차로 횡단했다. 약 100일에 걸친 이 장정은 몽골제국 1000년 흥망사를 되새기며 진행됐다. 드넓은 초원에서 테무진이 태어나 몽골족의 지도자 칭기즈칸이 되고 그와 그의 후손들이 세계 제국을 세웠다가 몰락해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는 20세기까지 파란만장한 몽골 역사가 대륙의 현장에서 생생히 설명된다.
테무진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던 중 끌려온 어머니 후엘룬과 그렇게 신부를 빼앗아 온 아버지 예수게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예수게이가 타타르족을 약탈하고 장수인 테무진을 잡아왔을 때 마침 그가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잡혀 온 적장의 이름을 따 ‘테무진’으로 불리게 됐다. 테무진과 그의 후예들은 가볍고 빠른 기병들과 함께 금나라를 정복하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아랍과 동유럽에까지 이어지는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다.
칭기즈칸에 이어 셋째 아들 오고타이가 왕위에 오른 뒤 손자인 바투가 러시아를 정복했고 다른 손자 훌레구가 중동지역을 장악했다. 그리고 13세기 후반, 또 다른 손자 쿠빌라이칸의 시대에 이르러 그동안의 파괴를 바탕으로 평화의 시대, 즉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가 완성됐다.
이 길과 역사를 따라 간 저자의 대장정은 2000년 YTN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됐고, 다시 그 이야기가 수백장의 사진 자료와 함께 1년반에 걸쳐 야후(Yahoo)와 YTN 홈페이지에 연재됐다. 연인원 약 800만명의 네티즌들이 이 장정에 동참했다.
그 내용을 정리한 이 책에서 저자는 몽골제국의 지나간 역사를 이야기했지만, 이 ‘시간여행’이 단지 지난 세월을 돌아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유목민의 시대’라는 21세기의 눈으로 이 ‘유목제국의 세계경영사’를 바라봤다.
최신 병기인 투석기에서 발사되는 돌들을 이용해 공중폭격으로 적을 초토화한 뒤 공격해 들어간 1258년 몽골의 바그다드 공략은 바로 최근 미국의 바그다드 공략과 너무도 유사하다. 바그다드가 이런 최신 병기에 별 대항도 못해 보고 함락된 것이나, 심지어 내부의 시아파로부터 공격받은 것까지 비슷하다.
저자는 팍스 아메리카를 능가하는 팍스 몽골리카의 비결을 찾아냈다. 세계를 빠른 속도로 연결하는 정보전달시스템인 ‘역참제(驛站制)’, 유목민 연합체의 조직을 체계적으로 통솔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법률의 엄격한 적용, 민족 인종 종교를 초월한 포용 정책….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유목민의 정신’이었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서 사는 날, 내 제국은 망할 것이다.”
칭기즈칸은 자손들에게 유목민의 기질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 정신을 지키기 위해 쿠빌라이칸은 궁궐 안에 몽골인의 이동 주택인 게르를 설치해 놓고 그 속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몽골인들이 정주민 사회의 안락한 생활을 배워나가면서 결국 세계제국은 무너졌다. 그리고 16세기 말 알탄칸의 주도로 티베트 불교로 개종한 뒤 용맹한 몽골 전사들은 활과 칼 대신 불경을 들게 됐다.
저자는 이 ‘유목민 정신’의 회복을 역설하며 한반도에서 북방의 조선족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그리고 그 중앙의 몽골인을 연결해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신 실크로드’를 꿈꾼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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