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도쿄대 졸업식.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고시바 마사토시 명예교수(물리학)가 환등 장치의 스위치를 켰다. 화면에는 그의 도쿄대 졸업 성적증명서가 비춰졌다. 양양가가양양양….
16과목 중 14과목이 ‘양’ ‘가’로 채워진 성적표를 가리키며 66세의 노학자는 말했다. “학업 성적이란 배운 것을 이해하는 수동적 인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동적 인식’입니다.”
7개월 뒤, 고시바 교수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 통보를 받았다. 1987년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中性微子·뉴트리노) 관측에 성공한 지 15년 만이었다.
‘샐러리맨 노벨 화학상 수상자’ 다나카 고이치와 함께 일본에 3년 연속 과학부문 노벨상을 안겨준 고시바 교수. 그가 자서전인 이 책에서 말하는 ‘성공 키워드’는 무엇일까. 첫째는 자신이 ‘오기’라고 말하는 특유의 의지였다.
대학입시가 몇 달 남지 않은 어느 날, 기숙사 목욕탕의 자욱한 수증기 속에서 역학(力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시바? 물리가 되지 않으니까 인도철학과나 독문학과에 갈지 모르지만….” 그는 이 말을 듣고 물리학과 진학을 결정했다.
미국 로체스터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학위를 받으면 매달 일본 대학교수의 4배의 급료를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학생들이 모이는 곳에 발길을 끊었다. 박사학위 취득에 걸린 1년8개월이라는 기간은 이 학교의 최단기록으로 남아 있다.
물론 노벨상은 ‘오기’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의 두 번째 성공 키워드는 그가 속한 사회의 건강성과 ‘지식 발전의 합의’였다. 전자-양전자 충돌실험의 경비가 없었던 그는 한 대기업 부설 재단을 찾았다. 이 재단의 이사장은 ‘일본 산업계에 어떤 플러스가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고시바 교수는 “100년쯤 지나야 알 수 있겠다”고 솔직히 대답했고, 이사장은 돈을 내주었다.
수십억엔이 들지, 수백억엔이 들지 모르는 지하 1000m의 뉴트리노 관측시설 ‘가미오칸데’ 설치에도 정부는 서슴없이 지원을 해주었다. 이 역시 ‘산업계의 이득’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일이었다.
불과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그는 말한다. “전 세계에 이런 시설 몇 개를 만들어 네트워크로 연결하면 지구상 어디에 우라늄이 얼마나 매장되어 있는지도 진단할 수 있다.”
그의 세 번째 성공 키워드는 ‘운’이었다. 1987년, 4세기 만에 처음이라는 초신성의 폭발 소식이 들렸다. 17만 광년 밖에서 날아온 뉴트리노는 기록장치에 11개의 점을 찍었다. 사람이 할 일을 한 뒤(진인사·盡人事) 날아든 하늘의 뜻(천명·天命)이었다.
그러나 운도 공짜로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연구목적에 대한 끊임없는 숙고가 풍요한 결실로 되돌아왔다.
“진정한 연구자라면 머릿속에 연구를 위한 알(卵)을 적어도 3개는 품고 있어야 한다.” 그가 후배 학자들에게 주는 충고다. 원제 ‘やれば, 出る’.(2003)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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