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영어식 제목에는 저자(고려대 교수·사회학)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인의 분산 이주’라는 제목은 안 되는 것인가? 혹은 ‘해외동포 이주 적응사’는 어떤가? 대답은 물론 ‘노(No)’다. 1860년대부터 네 차례에 걸쳐 해외로 이주한 한인의 분산과 재이주의 성격이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제목에는 타의에 의한 서구적 근대의 수용, 제국주의의 침략, 냉전 그리고 지금의 세계화까지 우리가 19세기 이후 겪은 역사의 일그러진 모습이 모두 들어있다. 한반도라는 내부에 살고 있어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모순과 갈등을 해외동포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그대로 감내하며 보여준다. 그러기에 ‘조선인’의 이주라고 쓰면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과거로의 퇴영적 성격이 나타나 꺼려지고, 입양아 및 기러기아빠를 남긴 최근의 새로운 ‘반쪽이주’까지 설명하자면 해외동포의 개념이 궁색해진다. 이런 엉거주춤한 상태가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그대로 쓴 이유이지만, 이는 곧 현재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저자는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인 이광규 서울대 명예교수(인류학)의 뒤를 이어 재외한인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소위 제2세대 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세계화 시대에 다시 분산 이주하고 있는 재외한인의 모습을 국제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으로 광범위하게 정의되는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원용해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탈냉전 시기에 새롭게 전개되는 중국 조선족의 연해주 지역 재이주나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러시아로의 재이주를 직업, 거주패턴, 민족관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정체성의 변화로 나누어 설명한다. 또한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일본의 한인, 흑인이나 히스패닉계와의 민족관계라는 새로운 현실과 마주한 미주교포, 그리고 가장 최근의 신흥 이주지인 캐나다의 토론토를 분석하고 있다. 즉 세계화시대에 세계적으로 ‘새롭게’ 분산 이주하고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현실을 종합적으로 담아내는 담대한 노력을 이 책은 보여준다.
하지만 엉거주춤한 현실은 담대한 작업에 장애가 된다. 광복 전의 이주 역사와 세계화 시대의 이주가 성격적으로 판이하게 다르고, 거주국의 특수성이 한인들의 상황을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현실도 일반화를 어렵게 한다. 각 지역의 한인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가 미흡한 점도 이를 전체적으로 종합하려는 연구자에게는 어려움이 된다. 그러나 얽혀있는 실타래와 같은 한인들의 현 상태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원하는 일반 독자라면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이 적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 추구하는 한민족네트워크의 구축도 현재까지의 이런 연구 조사를 출발점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이진영 국민대 교수·정치학 jeanyle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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