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술에…’ 딱딱한 교과서 미술 쉽고 재미있게

  • 입력 2004년 3월 26일 17시 27분


후기 인상파 대표화가 폴 세잔의 ‘사과 광주리가 있는 정물’(1890∼1894). 저자는 “언뜻 어색하고 엉성해 보이는 그의 그림은 데생이나 원근법이 아닌 색채만으로 거리감을 표현하기 위한 실험의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사진제공 다빈치

후기 인상파 대표화가 폴 세잔의 ‘사과 광주리가 있는 정물’(1890∼1894). 저자는 “언뜻 어색하고 엉성해 보이는 그의 그림은 데생이나 원근법이 아닌 색채만으로 거리감을 표현하기 위한 실험의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사진제공 다빈치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이명옥 지음 /304쪽 1만5000원 다빈치

‘이발소 명화’전,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전, ‘일기예보’전 등 참신하고 대중적인 전시로 주목을 끈 서울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이 초중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80여점의 명화들을 다룬 미술 에세이를 펴냈다. ‘팜 파탈’ ‘날씨로 보는 명화’ ‘갤러리 이야기’ 같은 책으로 미술과 대중의 만남을 시도해 온 저자는 이번에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교과서 미술을 화두로 삼았다.

“1997년 여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교과서 미술’전을 했는데 한 달 동안 무려 5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왔어요. 미술은 어렵다고 손사래를 치던 사람들도 눈에 익숙한 교과서 미술품을 통해 미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지요.”

이 관장은 삶의 지혜와 성찰이 교과서에 있듯, 미술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우리가 배워야 할 인생의 모든 것들이 교과서 미술 속에 담겨 있다’고 붙였다.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린 자화상은 인간적 체취와 고독을 강하게 느끼게 합니다. 마지막 자화상답게 인생의 비애가 짙게 풍겨 나오지요. 세월은 화가의 얼굴에 거칠고 투박한 시간의 나이테를 새겼으며, 눈빛에는 체념과 슬픔, 고뇌가 교차합니다. 그는 63년 동안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삶의 덧없음을 깨닫고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화상은 늙은 화가의 심리 상태를 감동적으로 보여 줍니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이 ‘뼈’라고 한다면 작품을 낳은 시대와 사회를 설명하고 ‘왜 그렸을까’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역사 사회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풀어 내는 저자의 설명은 ‘살을 붙이는 작업’처럼 보인다.

‘모나리자가 중요한 것은 정면 초상화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중시했던 르네상스 화가들은 인물의 생생한 표정 변화를 담기 위해 그전까지 그렸던 옆면 초상화를 정면으로 바꿉니다. 당시 명성이 자자한 초상화가들이 경쟁하듯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지만 누구도 다빈치의 솜씨를 능가하지 못했습니다. 다빈치는 몸을 약간 비튼 포즈로 모나리자를 그렸어요. 이 포즈는 옆면 초상과 정면 초상의 장점을 하나로 결합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모나리자는 우아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1급 초상화로 창조되었습니다.’

저자는 추상화, 상상화, 오브제, 풍경화 등 17개의 장르로 작품을 분류한 뒤 독자들이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과 해답을 번갈아 던진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 친숙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면 어느덧 머릿속에 당시의 사회상과 맞물린 미술사의 지형도가 그려진다. 다음은 ‘한국의 풍속화’ 편에 나오는 한 대목.

‘18, 19세기는 조선 사회의 봉건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때 맞춰 상업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엄격했던 신분 계층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어요. 새롭게 양반이 된 졸부들은 양반임을 과시하기 위해 집안을 그림으로 장식하려 했어요. 이들은 사대부의 정신세계를 담은 어려운 산수화나 문인화 대신 자신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풍속화에 눈을 돌렸던 거지요.’

마치 다정하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줄곧 경어체로 이어지는 문장들은 쉬우면서도 간결해 술술 읽힌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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