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의 한 화랑은 모 재벌 계열사로부터 “외국 손님들을 위해 로비에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구입이나 임대 상담에 응했으나 성사에 실패했다. 이 화랑 관계자는 “작품 구입을 권하니 ‘미술품이 비업무용 자산으로 분류되어 있다’며 난색을 표했고, 임대를 권했더니 임대료와 보험료를 합치면 3년이 지날 경우 사는 것보다 비싸다는 결론이 나와 결국 포기하더라”고 전했다.
화랑들이 원하는 세제 혜택으로는 △서화(書畵)와 골동품을 업무용 자산으로 전환해 구매 비용을 손비로 인정해주고 △금융기업에 한해 미술품 투자를 허용하며 △개인이 미술품을 구입할 때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법인이나 개인이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할 때 기부에 따른 세제 혜택을 주는 것 등이다.
이 같은 화랑들의 주장에 대해 일부 미술인들은 외부적 여건 마련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희대 최병식 교수(미술평론가)는 “현재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가격이 실종되고 사고팔기가 원활하지 못해 시장의 최소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라며 “컬렉터들의 가장 큰 원성은 100원에 작품을 샀으면 70원에라도 팔 수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작품을 팔았던 화랑은 나 몰라라 하기 일쑤고 경매에 내 놓자니 대가급 외에는 가격 형성이 안 된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외국처럼 우리도 주요 작품에 한해 1년 단위로라도 가격동향을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효주 한국예술경영학회장은 “작가와 화랑들이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해 전속 작가제도를 꾸준히 밀고 나가 외국처럼 ‘작품은 화랑에서 구입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뿌리 내려야 한다”며 “또 미술을 즐기는 대중이 없다고 투덜대지만 말고 교육과 마케팅에 신경을 써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 미술인은 “미술품 구입에 신용카드나 할부결제조차 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우리 화랑의 현실”이라며 “여기에 평단과 작가들은 자기들만의 성을 쌓아 놓고 대중이 무지하다고 투덜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전체 미술시장의 20%나 되는 조형물 설치시장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나라 조형물 시장은 일부 작가와 화랑들이 연결된 각종 리베이트의 온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 최근 문화관광부가 현재 1만m² 이상 신축 또는 증축 건물에 건축비용의 0.7%를 미술 장식품으로 해야 하는 현행 조항을 개정해 기금으로 납부할 경우 0.5%로 내리겠다는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대부분 기금 납부를 꺼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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