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일본에서 가장 기이한 풍경 중의 하나가 여고생들의 ‘루스삭스(loose socks)’였다. 루스삭스란 무릎 가까이까지 올라온 양말을, 그 속에 있는 고무를 일부러 빼 느슨하게 한 뒤 땅에 끌릴 정도로 밑으로 내려 신는 것을 가리킨다. 그 추세가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한때는 거의 대부분의 여고생들이 이 ‘루스삭스’를 끌고 떼를 지어 다녔다. 옷의 유행이란 것이 본디 비합리적인 면도 있고,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의 유행은 나이 든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런데 이 ‘루스삭스’에서는 젊은이들의 유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항정신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아무리 무릎 아래에는 괴상한 양말을 신었어도 교복은 항상 반듯하게 입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루스삭스’가 대담하고 위험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일본 여고생들은 이런 복장을 할까? 이 책은 이런 의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공해 준다. 즉 요즘 젊은이들이 ‘원숭이화’돼 가고 있어서라고.
동물행동학, 그중에서도 원숭이들의 생태 관찰이 주 전공인 저자는 주변 젊은이들의 행태를 관찰하다가 그들의 행태가 자신의 연구 대상인 일본원숭이와 꼭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일본원숭이들은 무리를 지어 집단행동을 하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원숭이들과는 결코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런 일본원숭이들의 생태가 요즘 젊은이들과 매우 흡사하다고 말한다. 온종일 자기 방에 틀어 박혀 밖에 나오지 않는 청소년, 전철에서 큰소리로 휴대전화를 하는 무례한 젊은이,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노려보며 내용 없는 메시지를 자기네끼리 주고받는 사람들…. 이들은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철저히 거부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유형의 생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루스삭스’란 방안에서 신는 슬리퍼를 바깥에서 신는 것과 똑같은 감각이며, 사회적 공간을 거부하는 몸짓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원숭이화’ 현상의 원인을 공공(公共) 공간에서 타자(他者)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데서 찾고 있다. 이 책은 동물생태학적 견지에서 행해졌던 다양한 실험을 그 예로 들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성과를 사회 현상에 직접 대입시키는 책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 즉 교묘하게 꿰어 맞춘 듯한 견강부회식의 논리 전개는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원숭이화’되지 않았다고 자칭하는 어른들은 과연 ‘인간다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타자와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어른들이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많지는 않을까? 아니 좀 더 과감하게 말한다면, 어쩌면 이 시대는 인류 전체가 ‘원숭이화’돼 가고 있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우리들의 논의 자체가 사실은 원숭이들에게 대단히 큰 실례가 된다는 생각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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