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채(陳蔡) 땅에서 곤액이 심하니, 도를 행하느라 그런 것은 아닐세. 망령되이 누추한 골목에서 무슨 일로 즐거워하느냐고 묻던 일에 견주어본다네. 이 무릎을 굽히지 않은 지 오래되고 보니, 어떤 좋은 벼슬도 나만은 못할 것일세. 내 급히 절하네.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이. 여기 또 호리병을 보내니 가득 담아 보내줌이 어떠하실까?”
이것은 조선후기 북학파 3인 중 한 사람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제자처럼 자신을 따랐던 후배인 초정 박제가(1750∼1805)에게 보낸 척독(尺牘)이다. 척독이란 요즘의 엽서 정도에 해당하는 짧은 편지다. 18세기에 꽤나 유행했던 글의 형식으로 편지 한 장에도 예법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형식을 넘어 짧은 글 속에 두 사람만의 마음을 담았던 무형식의 서간문이다. 그 내용이야 편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만 이심전심으로 알아들으면 될 이야기이므로 상대의 내공(內功)에 맞춰 문자를 놀리는 솜씨가 일품인 것이 많다. 박지원의 이 척독도 그 중의 하나다.
진나라와 채나라 땅에서 어려움을 당했던 공자의 고사를 인용하되 공자처럼 도를 행하느라 그런 것은 아니라고 겸사(謙辭)를 늘어놓다가, 세상에 뜻을 굽히지 않고 사는 즐거움을 자랑하더니, 돈을 좀 보내달라며 술병까지 덧붙여 보낸다는 내용이다. 당시 명문가인 반남(潘南) 박씨 가문의 박지원이 별 볼일 없는 서얼 출신의 13년 연하 후배 박제가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고, 박제가는 또 군소리 없이 짧은 척독 한 장과 함께 돈을 보냈다.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한국 고전의 멋을 소개해 온 저자(한양대 교수·고전문학)가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글들을 모아 그들의 삶과 함께 소개했다. 정민 교수가 관심을 기울인 인물들은 대체로 당대에는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변방의 지식인이다.
그중에는 박지원과 박제가처럼 부귀영화는 누리지 못했을지언정 지우(知友)를 만나 행복한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뛰어난 재주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의 시기를 사 결국에는 굶어죽기에 이른 천재 천문학자 김영(金泳) 같은 이도 있다. ‘백이전(伯夷傳)’을 11만3000번이나 읽었다는 독서광 김득신(金得臣), 과거시험을 대필해 주면서 세상을 조롱하며 살다 간 노긍(盧兢), 열다섯의 나이에 전남 강진에 귀양 와 있던 정약용을 만나 평생 묵묵히 ‘재주 없는’ 학인(學人)의 길을 간 황상(黃裳)….
이런 이들의 삶을 돌아보며 건져낸 이 책의 제목은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책에, 진리에, 자신의 삶에 미치지 않고는 자신이 이룬 경지에 다다를 수 없었던 조선 지식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인생 이야기들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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