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한 강씨는 1989년 또 다른 예술가 소설 ‘가까운 골짜기’를 펴낸 바 있다. 그는 “당시 정사(情事) 장면 하나를 써놓고는 에로티시즘과 예술의 관계가 손에 잡히지 않아 한정 없이 묵혀뒀다”며 “3년 전 ‘어떤 저린 체험’을 한 다음에야 불현듯 그때 정사 장면을 살려내는 스토리와 테마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법명(法名)이 ‘미불’인 칠순의 이평조는 한때 ‘왜색풍’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수묵 중심의 기존 한국화를 거부하고, 색채와 구도로서 새 경지를 꽃피워온 화가. 그는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세속적이고 퇴폐적인 여자 박진아와 ‘살을 나누면서’ 창작 에너지를 얻는다.
작품 속 정사장면들은 섬세하지만 도발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선정적이다. 사랑에 대한 이평조의 입장은 이렇다.
“순애(純愛)의 달은 지순하여 아름답다. 그러나 정사(情事)는 무정한 폭풍우에 흩날려 버리기에 찬란하지 않은가. 덧없기에… 찰나이기에 꽃이 고혹적인 것을….”
강씨는 “성적인 에너지는 예술가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에너지의 근원이라고 본다”며 “갖가지 벗은 몸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놓은 인도 성전(性典) ‘카마수트라’를 보면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점을 인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불은 여자의 몸을 통해 아찔한 쾌감을 맛보다가도 불현듯 죽음과 마주할 때가 있다. 절정에 올랐을 때 고분(古墳)의 환상 같은 것을 본다. 그 환상은 ‘피리처럼 가느다란 통로’ 끝에 자리 잡은 이집트 왕의 무덤으로까지 이어진다.
경주에 10년째 살고 있는 강씨는 “천마총 안을 여러 번 들어가 봤는데, 자궁 속의 태아가 편안하다고 느낀다면 아마 이런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진아는 미불에게 삶과 죽음의 예술적 색채들을 다 보여주는 후원자이지만, 미불을 통해 생활고에서 벗어나려는 ‘찌들고, 영악한 뮤즈’이기도 하다. 미불은 유학을 떠나는 딸을 좇아 인도를 여행한 후에 삶의 황혼을 불태울 에너지를 얻어 돌아오고 눈부신 활동을 해나가지만 진아의 덫에 걸리고 만다. 진아는 자신의 ‘헌신’에 대한 대가로 미불의 그림들에 대해 가압류 소송을 낸다. 더구나 미불은 암에 걸렸다는 통고마저 받는다. 그는 자기 삶과 예술의 막바지를 장식할 최후의 결단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올해로 데뷔 30년째인 강씨는 “요즘 예술가들을 보면 파격으로 나아가고 전위가 되고자 하기 보다는 단정한 모범생이 되려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작품 속 미불에 대해 “탐욕을 가누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인간이고, 그래서 번뇌가 많다”며 “하지만 화폭 앞에 서면 자유와 영감을 얻고 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나 역시 누추한 현실에 자유를 제약 당하는 불완전한 처지이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퇴고와 교정을 수 십 번 씩 거듭하며, ‘나’를 이겨내거나, 아예 ‘나’를 잊곤 한다”고 말했다.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소설 ‘마담 보바리’의 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에 “보바리, 그는 바로 나다”라고 말했다. 미불의 모델이 있느냐고 묻자 강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불요? 바로 접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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