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어렵사리 외국 학술대회에라도 초청받아 가면 밥은 안 먹어도 미술관은 꼭 찾아다녔습니다. 찬연한 빛깔들 앞에 서면 뭉클한 게 가슴에 서리더군요.”
그의 서울 여의도 자택에는 40년 넘게 유럽 미술관 곳곳을 다니며 모아온 도록 100여권이 꽂혀 있다.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창립멤버인 문 교수는 90년 이곳에서 은퇴할 때까지 약 2000구의 시신을 검안했다. 그는 이같이 관록 있는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그림 자체의 미학을 넘어 그림 속에 숨은 사연과 내막을 풀어내곤 한다. ‘명화로 보는 사건’은 그 역량이 잘 드러난 책이다. 37개의 장에 명화들을 제시해 놓고 그림이 연상시키는 갖가지 사건들을 추리소설처럼 풀어 놓고 있다.
그는 그리스신화의 제우스가 아름다운 처녀 이오를 증거도 남기지 않고 겁탈하기 위해 먹구름으로 변한 장면을 그린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알레그리 코레조의 ‘제우스와 이오’를 제시하고는 ‘완전범죄’를 꿈꾸며 여비서를 수장(水葬)했다가 실패한 어떤 사장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문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꼽는 이는 단연 빈센트 반 고흐. 총에 맞고 이틀간 연명하다 숨진 고흐의 죽음을 놓고 자살이냐 타살이냐는 논란이 많지만 그는 ‘자살’로 분석했다. 근거는 고흐의 그림 ‘도비니의 뜰’. 이 그림에는 고흐가 분신처럼 여겨온 검은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숨질 무렵 다시 그린 ‘도비니의 뜰’에서는 고흐 스스로 고양이를 지워버린다.
“고흐는 압생트라는 독주(毒酒)에 중독되면 노란색이 잘 보인다는 걸 알고는 이 술에 절어 지냈습니다. 그가 살았던 프랑스 아를에는 고흐미술관이 없더군요. 고흐가 몸을 망쳐가며 빚어낸 노란색을 인테리어에 활용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상혼만 보여 낙담이 컸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사망 원인을 밝혀내려는 부검의 의미에 대해 오해가 깊다”며 “법의학을 재미있게 풀어낸 책들을 계속 써서 일반인과의 거리를 좁혀보겠다”고 말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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