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에 일어난 섹슈얼리티의 변화는 이 시대를 ‘성의 세기’로 부르게 할 만큼 가히 혁명적이었다. 20세기 초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성 담론 이래 성의 역사를 고쳐 쓸 만한 변화들이 이어졌다.
성전환 수술의 성공, 경구용 피임약의 보급과 시험관 아기의 탄생, 그리고 비아그라의 시판 등은 출산이나 성이 더 이상 조물주의 소관이 아님을 보여줬다. 더욱이 성과 생식의 분리로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수 있게 되면서 현대사회의 성은 남녀 모두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됐다.
그런데도 인간은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태어나 이성의 짝과 혼인하고 자녀를 출산해야 한다는 오랜 통념 때문에 아직도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삶을 선택한 이들을 일탈자로 간주한다. 동성애 문제는 이런 통념과 관습을 내세워, 동성의 짝을 선택한 이들에게 비정상적 소수자의 삶을 강요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정상 가족’의 신화와 이성애에 내재된 성 불평등성이 부각되고 혈연가족 역시 개인의 미더운 보호처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정상적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게 됐다.
새로운 인간관계의 방법을 찾는 움직임이 활발한 요즘, 저자(미국 위스콘신대 교수·철학)는 레즈비언이 되고 레즈비언으로 사는 것이 단순히 억압과 배제의 경험이거나 생물학적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적극적 선택’의 과정이라는 낯설지 않은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특정한 인종적 사회경제적 성적 편향에 익숙해진 삶 속에 묻혀버린 지혜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하여 이른바 ‘보편적 진리’에 압도되어 ‘평균’과 ‘정상’이란 칼을 휘둘러 온 우리에게 소수자의 억압을 바로 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카드 교수의 주장은 “모든 진리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진리”라는 미셸 푸코의 언명을 떠올리게도 하고, 레즈비언은 레즈비언으로 차별받기에 앞서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현실을 직시한다는 점에서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모습과도 닮았다.
카드 교수는 커밍아웃을 통한 레즈비언의 자기 노출과정을 독자들이 공유하도록 친절히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편견과 호기심, 그리고 긴장을 쉽게 허물어 버린다. 나아가 레즈비언이 된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레즈비언을 선택하는 과정이며 그런 선택은 자신의 관심, 에너지, 자원 등을 특정한 경험에 헌신하는 것임을 크고 작은 에피소드와 함께 입증해 보인다.
여기서 카드 교수는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치판단의 문제이자 적극적 선택의 문제로 전환시킨다. 더욱이 레즈비언 선택은 이제까지는 불가능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선택이라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라고 평가한다.
이제 적당히 부드러워진 햇빛과 꽃향기 그윽한 봄 그늘 아래에서, 그가 제시하는 ‘레즈비언 선택’이 과연 출구 없이 질주하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가능성일 수 있는지, 그리하여 ‘친밀성’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두터운 밀실의 문을 열어 기꺼이 다른 공간과 마주할 수 있는 계기로 해석할 수 있는지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일이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김혜영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사회학 fami2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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